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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01호

하동 쌍계사 동종 (河東 雙磎寺 銅鍾)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 의식법구 /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10.12.21
소 재 지 경상남도 하동군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쌍***
관리자(관리단체) 쌍***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전체높이가 94cm이고, 입지름이 62cm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대형에 속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 감도는 쌍계사 동종은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위에 단룡과 음통을 갖춘 종뉴가 있으며, 천판 아래로 승형의 입상화문대를 촘촘하게 표현하였다. 동종의 종형을 살펴보면, 외선이 천판 아래에서 종신 중단까지는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지만, 종신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직선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어 시각적으로 종구가 좁아진 형태이다.

종신은 다양한 도안이 고부조로 장식되었는데, 천판 아래에는 2줄의 연주문사이로 연판문과 당초문을 빽빽하게 부조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4개의 연곽과 원권(圓圈)의 범자(梵字)를 교대로 장식하였다. 연곽의 전체형태는 사다리꼴이며 연화당초문의 연곽대를 구획하여 그 내부로 만개된 9개의 연뢰를 표현하였고, 원권의 범자는 2단으로 상단에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하단에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주회하였다. 그리고 연곽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는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가 장식되어 있는데, 보살입상은 두 손에 연꽃을 쥐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며, 위패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종비반석왕도미륭혜일장명법주사계(宗啚磐石王道彌隆惠日長明法周沙界)’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 하단에는 연화당초문을 사용하여 한 줄의 띠 장식을 둘렀다.

쌍계사 동종은 종신 중간에 양각으로 제작연대와 봉안사찰을 기록하였는데, 그 내용을 통해 동종

은 ‘신사년(辛巳年)’에 현재의 쌍계사 대종으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작연대를 간지인 ‘신사(辛巳)’로만 간략하게 기록하였는데, 1857년에 작성된『영남하동쌍계사사적기문(嶺南河東雙磎寺事蹟記文)』현판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숭정년간(1628~1644)에 조선후기 유명한 선승인 벽암당각성(碧巖堂覺性, 1575~1660)과 소요당태능(逍遙堂太能, 1562~1649)이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동종은 중창이 진행되었던 기간에서 간지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1641년(인조 19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제작 장인을 기재하지 않았지만, 숭정연간 쌍계사 중창불사에 동원된 승장이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이 범종은 임진과 병자의 양란을 겪고 난 후 새로운 조선 후기 범종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그 크기가 큰 편에 속한다. 특히 단정한 주조기술과 문양이 돋보이면서도 조선 후기 전통형 범종을 고수하고 있는 1641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인 점과 17세기 승려 장인 사회를 연구하는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This bronze bell, currently on display in the Seongbo Museum of Ssanggyesa Temple, is quite large for a late Joseon bell, measuring 94cm in total height and 62cm in mouth diameter. The surface of the bell has a blackish hue, and the crown above its round and sloping shoulder is in the shape of two dragons and has a sound tube. In the area below the shoulder, the bell is ringed with a band of upward-facing lotus petal motifs at narrow intervals. The sides of the bell are gently curved until the mid-belly level before they descend to a narrow base, forming almost straight lines. The surface of the bell is decorated with various designs in high relief. Two bead bands run below the shoulder, and the space between the two bands is densely filled with lotus and scroll designs. In the area beneath, four trapezoids enclosing lotus flowers and four circles enclosing Sanskrit characters are placed alternately. Each of the trapezoids surrounded by a band of lotus and scroll designs on four sides contains nine full-bloomed lotus flowers. Meanwhile, inside each circle, characters of two mantras are distributed along the circumference. The empty spaces between the trapezoids are filled with four standing Bodhisattvas and four tablets. The Bodhisattva is shown descending from the sky, riding on a cloud, with a lotus flower in the hands. The tablet is inscribed with a phrase of prayer for the safety and prosperity of the royal house and the propagation of Buddhism. Finally, the bell is ringed, toward the base, with a belt of lotus and scroll designs. The inscription in intaglio, located at the mid-level, provides the date of casting and the name of the temple for which it was made: cast in the year of sinsa and housed in Ssanggyesa Temple. The year of sinsa, referenced here, appears to be 1641 (the 19th year of King Injo’s reign), judging from the date of reconstruction of this temple. The tablet with the chronology of Ssanggyesa Temple, carved in 1857, indicates that after its destruct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the temple was left in ruins until it was rebuilt during the Chongzhen era (11628-1644) by two famous Zen masters of late Joseon; namely, Buddhist Monk Gakseong (1575-1660) and Taeneung (1562-1649). The year during the period of reconstruction, which corresponds to sinsa in the sexagenary cycle, is 1641. Meanwhile, even though the inscription does not contain any mention about the artisans who made the bell, it is likely that they were the same as the artisans who were mobilized for the re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Bronze Bell of Ssanggyesa Temple, a well-preserved large temple bell, holds particular significance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new stylistic characteristics that emerged in late Joseon, in the wake of the Japanese Invasion and the Manchu Invasion it faithfully embodies. An early example of late Joseon bells showcasing the typical style of this period, displaying great workmanship, this bell can also cast light on the milieu of monk artisans of the 17th century.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전체높이가 94cm이고, 입지름이 62cm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대형에 속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 감도는 쌍계사 동종은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위에 단룡과 음통을 갖춘 종뉴가 있으며, 천판 아래로 승형의 입상화문대를 촘촘하게 표현하였다. 동종의 종형을 살펴보면, 외선이 천판 아래에서 종신 중단까지는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지만, 종신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직선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어 시각적으로 종구가 좁아진 형태이다.

종신은 다양한 도안이 고부조로 장식되었는데, 천판 아래에는 2줄의 연주문사이로 연판문과 당초문을 빽빽하게 부조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4개의 연곽과 원권(圓圈)의 범자(梵字)를 교대로 장식하였다. 연곽의 전체형태는 사다리꼴이며 연화당초문의 연곽대를 구획하여 그 내부로 만개된 9개의 연뢰를 표현하였고, 원권의 범자는 2단으로 상단에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하단에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주회하였다. 그리고 연곽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는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가 장식되어 있는데, 보살입상은 두 손에 연꽃을 쥐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며, 위패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종비반석왕도미륭혜일장명법주사계(宗啚磐石王道彌隆惠日長明法周沙界)’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 하단에는 연화당초문을 사용하여 한 줄의 띠 장식을 둘렀다.

쌍계사 동종은 종신 중간에 양각으로 제작연대와 봉안사찰을 기록하였는데, 그 내용을 통해 동종

은 ‘신사년(辛巳年)’에 현재의 쌍계사 대종으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작연대를 간지인 ‘신사(辛巳)’로만 간략하게 기록하였는데, 1857년에 작성된『영남하동쌍계사사적기문(嶺南河東雙磎寺事蹟記文)』현판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숭정년간(1628~1644)에 조선후기 유명한 선승인 벽암당각성(碧巖堂覺性, 1575~1660)과 소요당태능(逍遙堂太能, 1562~1649)이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동종은 중창이 진행되었던 기간에서 간지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1641년(인조 19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제작 장인을 기재하지 않았지만, 숭정연간 쌍계사 중창불사에 동원된 승장이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이 범종은 임진과 병자의 양란을 겪고 난 후 새로운 조선 후기 범종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그 크기가 큰 편에 속한다. 특히 단정한 주조기술과 문양이 돋보이면서도 조선 후기 전통형 범종을 고수하고 있는 1641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인 점과 17세기 승려 장인 사회를 연구하는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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