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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77-2호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 (李匡師 筆蹟 員嶠法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서예
수량/면적 1첩
지정(등록)일 2010.10.25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립중앙박물관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李匡師 筆蹟 員嶠法帖)』은 18세기 대중적 명필이던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것으로 글씨를 받은 사람이나 제작연대는 적히지 않았지만, 서첩에 찍힌 원교은자(員嶠隱者), 이광사(李匡師), 이광사필서(李匡師筆書), 이광사인(李匡師印), 이광사장(李匡師章), 도보(道甫), 원교(員嶠), 이도보씨(李道甫氏), 조선국이광사자도보(朝鮮國李匡師字道甫) 등의 인영(印影)을 통해 적거 이전 중년 필적으로 여겨진다.

이 서첩은 모두 40면으로 앞쪽의 25면은 밝은 옥색 비단에 먹으로 썼고, 중간의 9면은 매우 옅은 담옥색(淡玉色) 비단에 먹으로 썼으며, 뒤쪽의 6면은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썼다. 옥색ㆍ담옥색ㆍ검은색 비단에 먹과 금니를 사용하여 작고 큰 글자를 전예해행초 오체로 정성스럽게 썼다.

전서(篆書)를 쓴 부분에는 글자마다 오른쪽 위에 붉은 먹으로 석문(釋文)을 달아 보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표지에 있던 원래의 제첨(題簽)이 떨어진 듯 뒤에 “원교법첩(員喬法帖)[전해초(篆楷艸)]”라고 써놓았는데 ‘원교(員喬)’는 오류이므로 ‘원교법첩(員嶠法帖)’이라 고쳐 표기하였다.이 서첩은 현존하는 이광사의 수많은 서첩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작첩(作帖)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광사의 서론적(書論的)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This calligraphic work titled Wongyobeopcheop was written byYi Gwang-sa (1705-1777, pen-name: Wongyo), an illustrious calligrapher of the 18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Although its production date and recipient are unknown, it is thought to have been produced during Yi’s middle-age years, as it bears the imprints of many seals including those of Wongyoeunja, Yi Gwangsa, Yi Gwangsa Pilseo (calligraphy by Yi Gwang-sa), Yi Gwangsa-in (seal of Yi Gwang-sa), and Wongyo. Written in semi-cursive and cursive writing style, it consists of 40 pages, the first 25 of which are written in black ink on bright pale jade green silk; pages 26~34, in black ink on very light jade green silk; and the last 6 pages, in gold on black silk. The parts written in seal script (an ancient style of Chinese calligraphy) contain annotations written in red ink. Preserved in good condition, this calligraphic work exhibits the typical style of Yi Gwang-sa’s other extant works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李匡師 筆蹟 員嶠法帖)』은 18세기 대중적 명필이던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것으로 글씨를 받은 사람이나 제작연대는 적히지 않았지만, 서첩에 찍힌 원교은자(員嶠隱者), 이광사(李匡師), 이광사필서(李匡師筆書), 이광사인(李匡師印), 이광사장(李匡師章), 도보(道甫), 원교(員嶠), 이도보씨(李道甫氏), 조선국이광사자도보(朝鮮國李匡師字道甫) 등의 인영(印影)을 통해 적거 이전 중년 필적으로 여겨진다.

이 서첩은 모두 40면으로 앞쪽의 25면은 밝은 옥색 비단에 먹으로 썼고, 중간의 9면은 매우 옅은 담옥색(淡玉色) 비단에 먹으로 썼으며, 뒤쪽의 6면은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썼다. 옥색ㆍ담옥색ㆍ검은색 비단에 먹과 금니를 사용하여 작고 큰 글자를 전예해행초 오체로 정성스럽게 썼다.

전서(篆書)를 쓴 부분에는 글자마다 오른쪽 위에 붉은 먹으로 석문(釋文)을 달아 보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표지에 있던 원래의 제첨(題簽)이 떨어진 듯 뒤에 “원교법첩(員喬法帖)[전해초(篆楷艸)]”라고 써놓았는데 ‘원교(員喬)’는 오류이므로 ‘원교법첩(員嶠法帖)’이라 고쳐 표기하였다.이 서첩은 현존하는 이광사의 수많은 서첩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작첩(作帖)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광사의 서론적(書論的)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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