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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77-1호

이광사 행서 화기 (李匡師 行書 畵記)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서예
수량/면적 1축
지정(등록)일 2010.10.25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립중앙박물관

「이광사 행서 화기(李匡師 行書 畵記)」는 18세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42세 되는 1746년(영조 22) 여름에 쓴 것으로 왕희지 행서풍에 바탕을 두면서도 이광사 특유의 개성적 필치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의 중년 행서를 대표할 만하다.

앞쪽의 두 글자[顧ㆍ愷]가 좀 탈락된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필자미상이기는 하나 운원(運元)이란 사람이 무신년에 쓴 관기(觀記)가 딸려 있어 그 가치를 더해준다.

This short calligraphic work, a note to a painting, was written by Yi Gwang-sa (1705-1777, pen-name: Wongyo), an illustrious calligrapher of the 18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Written in the summer of 1746 (the 22nd year of the reign of King Yeongjo) when he was 42, this work is perfectly showcases Yi Gwang-sa’s signature style, although it is based on Wang Xizhi’s semi-cursive style of script. The piece is a great example of Yi’s style in his mid-years, and has been well preserved despite the loss of two characters from the beginning of the scroll. The note added by someone called Unwon, written in the year of Musin, adds further value to this work.

「이광사 행서 화기(李匡師 行書 畵記)」는 18세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42세 되는 1746년(영조 22) 여름에 쓴 것으로 왕희지 행서풍에 바탕을 두면서도 이광사 특유의 개성적 필치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의 중년 행서를 대표할 만하다.

앞쪽의 두 글자[顧ㆍ愷]가 좀 탈락된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필자미상이기는 하나 운원(運元)이란 사람이 무신년에 쓴 관기(觀記)가 딸려 있어 그 가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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