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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516호

김제 귀신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金堤 歸信寺 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소조 / 불상
수량/면적 3구
지정(등록)일 2007.04.20
소 재 지 전북 김제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귀***
관리자(관리단체) 귀***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약사불(向右)과 아미타불(向左)을 배치한 삼불형식으로, 흙으로 제작한 소조상이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는 대형의 소조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삼불좌상은 보물 제1360호 법주사 소조삼불좌상(玄眞 作, 1626년), 보물 제1274호 완주 송광사 소조삼불좌상(淸憲 作, 1641년) 등과 더불어 이러한 양상을 입증하여 주는 좋은 예이다.

이 삼불좌상은 규모가 매우 커서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하는데, 인자하고 부드러운 얼굴표현과 허리가 긴 장신형(長身形)의 불신(佛身)은 매우 우아하고 품위 있는 불격을 보여준다. 특히,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쥐고 왼쪽 검지 끝을 오른쪽 검지 첫째마디 쪽으로 뻗은 지권인의 표현은 명대 비로자나불에서 나타나는 수인(手印)이며 허리가 긴 장신형의 불상비례 역시 명초에 유행하던 표현이어서 명대 조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삼불좌상은 조선시대 1633년에 작성된 귀신사 나한전낙성문에 1633년 이전에 삼불상이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자수(子秀) 무경(無竟)의 <전주모악산귀신사사적사인(全州母岳山歸信寺事蹟詞引)>에 의하면 절의 중건이 1624년이라고 하므로 1624년에서 1633년 사이에 삼불좌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신사 비로자나 삼불좌상은 17세기 전반, 명대의 조각양식을 수용하면서 이를 조선불상에 정착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 내고자 하였던 일면을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거대한 규모와 소조불상 조각의 뛰어난 기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In this Clay Seated Vairocana Triad, the Buddha of All-pervading Light, is flanked by Bhaisajyaguru, the Medicine Buddha, and Amitabha, the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This is one of the large clay Buddha images produced during the 17th century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mpressive in size and carving technique, it shows influences from the early 17th-century style of Ming China but also attests to the effort of Korean Buddhist sculptors to establish a new style of their own. The large statues, though overwhelming, have gentle facial expressions and long torsos, resulting in elegant and dignified appearances standing for the Buddha nature. Particularly, the Vairocana at the center echoes the Chinese style of the Ming period in terms of its long torso and hand gesture symbolizing knowledge, called vajra mudra, enclosing the left hand with the right hand and stretching the left index finger toward the first joint of the right one. The dedication statement of the Nahanjeon Hall of Gwisinsa, dated 1633, says this triad was made before that year. The temple underwent overall repair in 1624, according to Jeonju Moaksan Gwisinsa sajeok sain (Records of Gwisinsa Temple in Moaksan Mountain, Jeonju), written by Buddhist Monk Jasu (1664-1737). Hence it is presumed that the images were made between 1624 and 1633. Also reflecting the trend of clay Buddha images of the early 17th century are two seated Buddha triads: one at Beopjusa Temple in Songnisan Mountain (Treasure No. 1360) and and one at Songgwangsa Temple in Wanju (Treasure No. 1274).

以智拳印的毗卢遮那佛为本尊佛,左面为药师佛向左,右面为阿弥陀佛向右的泥三佛造像。壬辰倭乱以后17世纪建造了许多大型塑造佛像,此三佛坐像与宝物第1360号法住寺塑造三佛坐像(玄真作,1626年)、宝物第1274号完州松广寺塑造三佛坐像(清宪作,1641年)等便是这类样式的例证。归信寺毗卢遮那三佛坐像展现了17世纪前期吸取明代雕刻样式于朝鲜佛像的同时欲创造出新颖样式的一个侧面。还展现了庞大的规模和塑造佛像雕刻的出色手法,被评价为重要资料。

智拳印の毘盧遮那仏を本尊にして、左右に薬師仏と阿弥陀仏を配置した三仏形式で、土で製作した塑造像である。壬辰倭乱以降の17世紀には大型の塑造仏像が多く作られたが、この三仏坐像は宝物第1360号の法住寺塑造三仏坐像(玄真作、1626年)、宝物第1274号の完州松広寺塑造三仏坐像(清憲作、1641年)などと共に、その事実を証明する良い例である。帰信寺毘盧遮那三仏坐像は、17世紀前半の明代の彫刻様式を受け入れ、それを朝鮮仏像に定着させたもので、新しい様式を創り出そうとした一面を現すだけでなく、巨大な規模と塑造仏像彫刻の優れた技法を良く見せているという点で、重要な作品であると評価されている。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약사불(向右)과 아미타불(向左)을 배치한 삼불형식으로, 흙으로 제작한 소조상이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는 대형의 소조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삼불좌상은 보물 제1360호 법주사 소조삼불좌상(玄眞 作, 1626년), 보물 제1274호 완주 송광사 소조삼불좌상(淸憲 作, 1641년) 등과 더불어 이러한 양상을 입증하여 주는 좋은 예이다.

이 삼불좌상은 규모가 매우 커서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하는데, 인자하고 부드러운 얼굴표현과 허리가 긴 장신형(長身形)의 불신(佛身)은 매우 우아하고 품위 있는 불격을 보여준다. 특히,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쥐고 왼쪽 검지 끝을 오른쪽 검지 첫째마디 쪽으로 뻗은 지권인의 표현은 명대 비로자나불에서 나타나는 수인(手印)이며 허리가 긴 장신형의 불상비례 역시 명초에 유행하던 표현이어서 명대 조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삼불좌상은 조선시대 1633년에 작성된 귀신사 나한전낙성문에 1633년 이전에 삼불상이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자수(子秀) 무경(無竟)의 <전주모악산귀신사사적사인(全州母岳山歸信寺事蹟詞引)>에 의하면 절의 중건이 1624년이라고 하므로 1624년에서 1633년 사이에 삼불좌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신사 비로자나 삼불좌상은 17세기 전반, 명대의 조각양식을 수용하면서 이를 조선불상에 정착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 내고자 하였던 일면을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거대한 규모와 소조불상 조각의 뛰어난 기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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