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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505호

대구 동화사 사명당 유정 진영 (大邱 桐華寺 泗溟堂 惟政 眞影)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나한조사도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2006.12.29
소 재 지 대구광역시 동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동***
관리자(관리단체) 동***

등받이가 높다란 의자에 우향하여 앉아 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의좌상(椅坐像)으로 신발을 벗은 채 의자에 발을 올려 결가부좌하고 앉아 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가는 선으로 윤곽을 짓고 이목구비를 표현하여 백묘법(白描法)을 보여주는 얼굴은 적당히 크고 길죽한 타원형으로 온화한 모습이나, 머리를 뒤로 약간 젖혀 내려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를 하여 의승병 대장으로서의 기상이 넘쳐난다. 건장한 어깨와 가슴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턱수염은 승병대장 다운 기백을 강조해주는데, 다른 사명당 영정들에 비해 길어진 수염이 특징적이다.

기품 있으면서도 은은한 회백색의 색채와 간결하고 유려한 필선이 사용된 장삼,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를 나타낸 선홍색 가사의 조화는 바르고 단정한 사명당의 승려로서의 품위는 물론 승병대장으로서의 권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겠다. 좌측 하단의 묵서명에 “가경원년병진(嘉慶元年丙辰)이란 연호가 있어 1610년 입적한 이후 늦어도 1796년에는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전해오는 10여점의 사명당 진영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자료이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22.9 x 78.8cm

Buddhist Monk Yujeong (1544-1610), also known as Samyeongdang, led a righteous army against Japanese invader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the late 16th century. After the war he negotiated a peace treaty with the Japanese shogun Tokugawa Ieyasu as a royal emissary and secured the repatriation of 3,500 Joseon prisoners of war. This portrait, regarded as the best among some dozen portraits of the renowned monk handed down in Korea today, well represents his powerful and dignified character. His face, rendered with the outlining technique, looks gentle but his eyes betray the shrewdness with which he led many battles as a commander of monk army. The robust torso and long beard also stand for his gallantry. The monk is seated cross-legged on a chair with a tall back, in a three-quarter view from left, holding a whisk in his right hand, which is placed on his knees. The elegant grayish-white robe is described with simple outlines in contrast with the gorgeous red shawl with elaborate patterns. At lower left is a colophon with the zodiac date, Byeongjin Year, which indicates the portrait was painted in 1796 at the latest.

高靠背椅上右向端坐的左颜七分面的椅坐像,脱鞋并将脚上抬结跏趺坐,手持拂子。用细线绘制轮廓和五官,脸部展现了白描画法,大小适中,瘦长的椭圆形表现了平静的形态,尖锐的眼神中充满了义僧兵大将的气势。健壮的肩部和直到胸下的颌下胡须强调了僧兵大将的气魄,与其他泗溟堂影帧相比,长长的胡须很有特点。长衫气度不凡,使用隐约的灰白色、简洁有力的笔线绘制,纹样精细华丽,与鲜红色袈裟协调搭配,表现了泗溟堂僧侣的端庄正直,也充分体现了僧兵大将的权威。左下方的墨书铭上有“嘉庆元年丙辰”的年号,推测是惟政1610年圆寂以后,最晚于1796年绘制而成。是国内流传的10多幅泗溟堂真影中最杰出之作。○规格(纵×横):122.9×78.8厘米

背もたれの高い椅子に右向して座っている左顔七分面の椅坐像である。靴を脱いだまま椅子に足を上げて結跏趺座して座り、手には仏子を持っている。細い線で輪郭を作って目鼻立ちを表現し、白描法で処理された顔は大きくて長い楕円形である。温和な姿ではあるが、顔の鋭い目つきからは、義僧兵大将としての勇猛な気運が溢れる。壮健な肩と胸下まで届く長いひげは、僧兵大将らしい気迫をよく見せており、他の泗溟堂の肖像に比べて長く強調されたひげが特徴的である。殷々な灰白色の色彩と簡潔で流麗な筆線が使用された長衫からは気品が感じられ、繊細で華麗な模様の紅色袈裟との調和が、端正な泗溟堂僧侶としての品格はもちろん、僧兵大将としての権威もよく表している。左側下端の墨書名に「嘉慶元年丙辰」という年号があり、この肖像は泗溟堂惟政が1610年に入籍した後、遅くても1796年には造成されたと推定される。国内に伝わる約10余点の泗溟堂肖像の中で、一番優れた作品である。〇規格(縦×横):122.9告.8cm

등받이가 높다란 의자에 우향하여 앉아 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의좌상(椅坐像)으로 신발을 벗은 채 의자에 발을 올려 결가부좌하고 앉아 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가는 선으로 윤곽을 짓고 이목구비를 표현하여 백묘법(白描法)을 보여주는 얼굴은 적당히 크고 길죽한 타원형으로 온화한 모습이나, 머리를 뒤로 약간 젖혀 내려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를 하여 의승병 대장으로서의 기상이 넘쳐난다. 건장한 어깨와 가슴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턱수염은 승병대장 다운 기백을 강조해주는데, 다른 사명당 영정들에 비해 길어진 수염이 특징적이다.

기품 있으면서도 은은한 회백색의 색채와 간결하고 유려한 필선이 사용된 장삼,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를 나타낸 선홍색 가사의 조화는 바르고 단정한 사명당의 승려로서의 품위는 물론 승병대장으로서의 권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겠다. 좌측 하단의 묵서명에 “가경원년병진(嘉慶元年丙辰)이란 연호가 있어 1610년 입적한 이후 늦어도 1796년에는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전해오는 10여점의 사명당 진영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자료이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22.9 x 78.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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