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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477-2호

채제공 초상 일괄 - 금관조복본 (蔡濟恭 肖像 一括 - 金冠朝服本)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수량/면적 초상1점, 함1점
지정(등록)일 2006.12.29
소 재 지 대전 동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채***
관리자(관리단체) 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금관조복본(1784년작)>은 65세 때 초상으로 왼편에 채제공의 자찬문을 이정운(李鼎運 1743- ?)이 썼다. 서양화법을 따른 명암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장식적인 금관조복을 금박, 선명한 채색, 명암법 등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사실성과 장식성을 어우러지게 하여 조선 초상화의 뛰어난 수준을 잘 보여준다. 누가 그렸는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입체감이 두드러진 안면과 옷주름의 표현, 그리고 바닥의 화문석 표현기법으로 볼 때 이명기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금관조복본 : 145 x 78.5cm(그림), 202.9 x 91.6cm(전체)

Chae Je-gong (1720-1799) was a renowned civil official of the late-Joseon Dynasty. He faithfully represented the political views of his faction on important issues to recover the honor of Crown Prince Sado, who was unfairly victimized, while playing an instrumental role in King Jeongjo's implementation of his policy of impartiality, by which he accorded equal favor to men of all political stripes in official appointments. This Portrait of Chae Je-gong in Ceremonial Robe (Treasure No. 1477-2) was painted in 1784, when he was 65 years old. Chae’s poem was written by Lee Jeong-woon (1743~?) on the left-hand side of the portrait. Chae’s face is realistically expressed using the western technique of shading, while his gold cap and court attire are splendidly conveyed with clear colors and shading. This portrait attests to the excellent standard of Joseon portrait techniques, which are harmonized with realistic and decorative features. Although the identity of the artist is unknown, going by the face with its sense of volume and the expression of the clothes’ folds and the figured matt on the floor, it is assumed that Yi Myeong-gi painted this portrait.

蔡济恭的肖像画。蔡济恭是朝鲜后期的文臣,坚守为思悼世子伸冤等自己政派的主张,是推行正祖荡平策的核心人物。《金冠朝服本(1784年作)》是蔡济恭65岁时的肖像,左边有李鼎运(1743-?)题写的蔡济恭的自赞文。以西洋画法的明暗法描绘面部,以金箔和鲜明的色彩、明暗法等华丽地描绘了装饰性金冠朝服。写实性和装饰性相互协调,充分展现了朝鲜肖像画的高超水平。画者不详,但从立体感突出的脸庞和衣褶、地面的花纹席绘制手法来看,推定是李命基之作。

朝鮮後期の文臣であった蔡済恭の肖像である。彼は、思悼世子の身元など自分の政派の主張を忠実に守りながら、正祖の蕩平策を進めた核心的人物である。「金冠朝服本(1784作)」は彼の65歳の肖像で、左側の蔡済恭の自賛文は李鼎運(1743~?)が書いたものである。西洋画法による明暗法を適切に駆使し、顔を写実的に描写している。装飾的な金冠朝服は、金箔、鮮明な彩色、明暗法などを使って華麗に表現した。写実性と装飾性を混ぜ、朝鮮時代の肖像画の優れた水準をよく見せている。誰が描いたかは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が、立体感の目立つ顔としわの表現、そして底の花文石の表現技法から、朝鮮時代後期の画家であった李命基が描いたものであると推定されている。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금관조복본(1784년작)>은 65세 때 초상으로 왼편에 채제공의 자찬문을 이정운(李鼎運 1743- ?)이 썼다. 서양화법을 따른 명암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장식적인 금관조복을 금박, 선명한 채색, 명암법 등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사실성과 장식성을 어우러지게 하여 조선 초상화의 뛰어난 수준을 잘 보여준다. 누가 그렸는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입체감이 두드러진 안면과 옷주름의 표현, 그리고 바닥의 화문석 표현기법으로 볼 때 이명기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금관조복본 : 145 x 78.5cm(그림), 202.9 x 91.6cm(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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