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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380호

신경행 청난공신교서 및 관련문적 (辛景行 淸難功臣敎書 및 關聯文籍)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수량/면적 8종 9점
지정(등록)일 2003.08.21
소 재 지 충북 청주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영***
관리자(관리단체) 국***

신경행(1559∼1623)과 관련된 문적으로 신경행 청난공신교서(辛景行 淸難功臣敎書)를 비롯하여 유서(諭書), 시호서경(諡號署經, 2점), 증시교지(贈諡敎旨), 조은신공시장(釣隱辛公諡狀), 청난원종공신록권(淸難原從功臣錄券), 이십공신회맹록(二十功臣會盟錄), 이십일공신회맹록(二十一功臣會盟錄) 등 모두 8종 9점이다.

신경행은 조선 선조 10년(1577) 문과에 급제하여 한산군수가 되었으며,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의 벼슬을 하였다. 선조 29년(1596) 7월에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이를 평정하는데 세운 공으로 청난공신이 되어 영성군에 봉해졌다. 죽은 뒤에 예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익’이다.

신경행 청난공신교서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신경행에게 내린 것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선무공신 및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호성공신과 함께 선조 37년(1604)에 발급되었다. 이 교서는 녹훈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청난공신 포상 규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교서의 양식과 문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유서는 선조 41년(1608) 6월 16일에 신경행을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임명하면서 제1부의 밀부를 내린 유서이다. 유서 가운데 제1부를 내린 것은 매우 희귀한 것으로 가치가 있다.

시호서경(2점)·증시교지·조은신공시장 등은 신경행이 ‘충익’이란 시호를 받는 과정을 알 수 있는 문서들이다. 시호서경은 사헌부 시호서경과 사간원 시호서경이 있는데, 순조 11년(1811) 6월에 증예조판서 신경행의 시호를 충익으로 정하는 것에 대하여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동의한 문서이다. 증시교지는 순조 12년(1812) 1월에 신경행에게 충익의 시호를 내리는 교지이다. 조은신공시장은 신경행이 시호를 받기 위하여 그가 살았을 때의 한 일을 가선대부 김이영(金履永, 1755∼1845)이 지은 글이다.

청난원종공신록권은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선조 38년(1605) 4월 16일에 공신도감에서 신경행의 아들인 주부(主簿) 신면(辛勉)에게 내려준 녹권이다. 이 녹권은 공신에 대한 대우와 포상규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조 원종공신관계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그밖에 이십공신회맹록 및 이십일공신회맹록은 신경행과 관련있는 자료들로, 당시 20공신·21공신과 그 자손들의 동향 및 당시의 정치상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십공신회맹록은 숙종 6년(1680) 남인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에 공을 세운 보사공신이 복훈되어 추록한 것을 계기로 숙종 20년 6월 20일 보사공신을 중심으로 역대의 공신 및 그 적장자들이 모여서 회맹제를 행하고 참여인을 수록한 명단이다. 이 회맹록에는 신경행의 4세손인 신득중이 기록되어 있다. 이십일공신회맹록은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의 녹훈을 계기로 영조 4년(1728) 7월 18일에 개국공신 이하 각 공신의 적장손들이 모여서 회맹제를 행하고 그 참여자를 수록한 명단이다. 이 회맹록에는 신경행의 6세손인 신광우(辛光禹)가 기록되어 있다.

신경행 청난공신교서 및 관련문적은 서지학·역사학 연구 및 조선조 공신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신경행 전기자료이기도 하므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세부목록>

1. 신경행 청난공신교서(辛景行 淸難功臣敎書), 조선 선조 37년(1604), 1축

2. 신경행충청도병마절도사유서(辛景行忠清道兵馬節度使諭書), 조선 선조 41년(1608), 1건

3. 사헌부-시호서경(司憲府-諡號署經), 조선 순조 11년(1811), 1건

4. 사간원-시호서경(司諫院-諡號署經), 조선 순조 11년(1811), 1건

5. 증시교지(贈諡敎旨), 조선 순조 12년(1812), 1건

6. 조은신공시장(釣隱辛公諡狀), 조선 후기(18세기 말), 1책

7. 청난원종공신록권 <주부신면>(淸難原從功臣錄券 <主簿辛勉>), 조선 선조 38년(1605), 1책

8. 이십공신회맹록-강희십구년(二十功臣會盟錄-康熙十九年), 조선 숙종 20년(1694), 1책

9. 이십일공신회맹록-옹정육년(二十一功臣會盟錄-雍正六年), 조선 영조 4년(1728), 1책

These are documents (nine in eight types) related to Sin Gyeong-haeng (1559-1623). Having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 in 1577 (the 10th year of King Seonjo’s reign), he served as Hansan-Gun Administrator and then as military commander in Chungcheong-do. He rendered distinguished services to the state by crushing the rebels led by Yi Mong-hak in July 1596 (the 29th year of King Seonjo’s reign). He was given the honorary title Lord Yeongseong by the central government and was posthumously designated as Protocol Minister. Cheongnan-gongsin-gyoseo, one of these documents, is a royal certificate issued to Sin Gyeong-haeng in recognition of his distinguished service in crushing the rebels led by Yi Mong-hak in 1604. This document contains detailed remarks about his service; thus, it is a precious material that tells us about the awards presented to meritorious retainers and provides information on the style of a written royal document presented to retainers. As one of these documents, Yuseo was a secret instruction stating that he should follow only the King’s order for the mobilization of troops in the event of rebellion or war. It was issued to him in June 1608 (the 41st year of King Seonjo’s reign) when he was designated as a military commander in Chungcheong-do. There are three other documents that tell us how Sin posthumously received the honorary title Chungik. Two of the documents show that the Instructor General’s Office and the Censor General’s Office consented to the presentation of said honorary title to Sin in 1811 (the 11th year of King Sunjo’s reign). Jeungsi-gyoji is a royal certificate for the presentation of said honorary title to Sin in 1812. Joeun-singong-sijang is an article composed by Kim I-yeong (1755-1845) about Sin Gyeong-haeng’s life. Cheongnan-wonjong-gongsin-rokgwon is a metal piece inscribed with the content of meritorious service (i.e., crushing the rebels led by Yi Mong-hak) performed by Sin Gyeong-haeng. It was presented to his son Sin Myeon in April 1605 by Gongsindogam (Government Office of Records for Meritorious Subjects). There are other documents on the distinguished services rendered by Sin Deuk-jung, Sin Gyeong-haeng’s fourth-generation grandson, and Sin Gwang-u, Sin Gyeong-haeng’s sixth-generation grandson. These documents are important materials for those studying bibliography, history, and matters regarding meritorious retainers and are biographical materials concerning Sin Gyeong-haeng.

是与辛景行(1559-1623年)相关的文籍,包括辛景行清难功臣教书、谕书和谥号署经两件、赠谥教旨、钓隐辛公谥状、清难原从功臣录券、二十功臣会盟录、二十一功臣会盟录等共8种9件。辛景行于朝鲜宣祖10年(1577年)文科及第,历任韩山郡首、忠清道兵马节度使等官职。宣祖29年(1596)7月李梦鹤在忠清道鸿山发难时期,辛景行平定有功,成为清难功臣被封为灵城军。死后追赠为礼曹判书,谥号“忠翼”。辛景行清难功臣教书是赐予平定李梦鹤之难立功的辛景行之教书,与壬辰倭乱时期立下大功的宣武功臣、护送宣祖至义州的扈圣功臣一同于宣祖37年(1604)颁发。此教书详细记录有录勋事实,是了解当时褒赏清难功臣规定的宝贵资料。也是研究教书样式和文体的重要资料。辛景行清难功臣教书及相关文籍是研究书志学、历史学及朝鲜初期功臣关系的重要资料。也是研究辛景行传记资料的重要资料。

辛景行(1559~1623)と関連した文書で、辛景行清難功臣教書をはじめに諭書、諡号署経(2点)、贈諡教旨、釣陰辛公諡状、清難原従功臣録券、二十功臣会盟録、二十一功臣会盟録など、計8種9点である。辛景行は朝鮮宣祖10年(1577)文科に級第して韓山郡守となり、忠清道兵馬節度使などの官職に就いた。宣祖29年(1596)7月に李夢鶴が忠清道鴻山で乱を起こした時は、それを平定した功で清難功臣となり、寧城君に奉じられた。彼の死後は禮曹判書に贈職され、諡号は「忠翼」である。辛景行清難功臣教書は李夢鶴の乱を平定するために功を立てた辛景行に下されたもので、壬辰倭乱の時に大きな功を立てた宣武功臣や、宣祖を義州まで扈従した扈聖功臣と共に宣祖37年(1604)に発給された。この教書は録勳事実が細かく記録されており、当時の清難功臣褒賞規定が分かる貴重な史料的価値があり、教書の様式と文体の研究に重要な資料である。辛景行清難功臣教書及び関連文書は、書誌学・歴史学研究及び朝鮮朝功臣関係研究に重要な資料であると同時に、辛景行伝記資料でもあり、その価値が高く評価されている。

신경행(1559∼1623)과 관련된 문적으로 신경행 청난공신교서(辛景行 淸難功臣敎書)를 비롯하여 유서(諭書), 시호서경(諡號署經, 2점), 증시교지(贈諡敎旨), 조은신공시장(釣隱辛公諡狀), 청난원종공신록권(淸難原從功臣錄券), 이십공신회맹록(二十功臣會盟錄), 이십일공신회맹록(二十一功臣會盟錄) 등 모두 8종 9점이다.

신경행은 조선 선조 10년(1577) 문과에 급제하여 한산군수가 되었으며,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의 벼슬을 하였다. 선조 29년(1596) 7월에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이를 평정하는데 세운 공으로 청난공신이 되어 영성군에 봉해졌다. 죽은 뒤에 예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익’이다.

신경행 청난공신교서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신경행에게 내린 것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선무공신 및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호성공신과 함께 선조 37년(1604)에 발급되었다. 이 교서는 녹훈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청난공신 포상 규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교서의 양식과 문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유서는 선조 41년(1608) 6월 16일에 신경행을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임명하면서 제1부의 밀부를 내린 유서이다. 유서 가운데 제1부를 내린 것은 매우 희귀한 것으로 가치가 있다.

시호서경(2점)·증시교지·조은신공시장 등은 신경행이 ‘충익’이란 시호를 받는 과정을 알 수 있는 문서들이다. 시호서경은 사헌부 시호서경과 사간원 시호서경이 있는데, 순조 11년(1811) 6월에 증예조판서 신경행의 시호를 충익으로 정하는 것에 대하여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동의한 문서이다. 증시교지는 순조 12년(1812) 1월에 신경행에게 충익의 시호를 내리는 교지이다. 조은신공시장은 신경행이 시호를 받기 위하여 그가 살았을 때의 한 일을 가선대부 김이영(金履永, 1755∼1845)이 지은 글이다.

청난원종공신록권은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선조 38년(1605) 4월 16일에 공신도감에서 신경행의 아들인 주부(主簿) 신면(辛勉)에게 내려준 녹권이다. 이 녹권은 공신에 대한 대우와 포상규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조 원종공신관계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그밖에 이십공신회맹록 및 이십일공신회맹록은 신경행과 관련있는 자료들로, 당시 20공신·21공신과 그 자손들의 동향 및 당시의 정치상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십공신회맹록은 숙종 6년(1680) 남인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에 공을 세운 보사공신이 복훈되어 추록한 것을 계기로 숙종 20년 6월 20일 보사공신을 중심으로 역대의 공신 및 그 적장자들이 모여서 회맹제를 행하고 참여인을 수록한 명단이다. 이 회맹록에는 신경행의 4세손인 신득중이 기록되어 있다. 이십일공신회맹록은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의 녹훈을 계기로 영조 4년(1728) 7월 18일에 개국공신 이하 각 공신의 적장손들이 모여서 회맹제를 행하고 그 참여자를 수록한 명단이다. 이 회맹록에는 신경행의 6세손인 신광우(辛光禹)가 기록되어 있다.

신경행 청난공신교서 및 관련문적은 서지학·역사학 연구 및 조선조 공신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신경행 전기자료이기도 하므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세부목록>

1. 신경행 청난공신교서(辛景行 淸難功臣敎書), 조선 선조 37년(1604), 1축

2. 신경행충청도병마절도사유서(辛景行忠清道兵馬節度使諭書), 조선 선조 41년(1608), 1건

3. 사헌부-시호서경(司憲府-諡號署經), 조선 순조 11년(1811), 1건

4. 사간원-시호서경(司諫院-諡號署經), 조선 순조 11년(1811), 1건

5. 증시교지(贈諡敎旨), 조선 순조 12년(1812), 1건

6. 조은신공시장(釣隱辛公諡狀), 조선 후기(18세기 말), 1책

7. 청난원종공신록권 <주부신면>(淸難原從功臣錄券 <主簿辛勉>), 조선 선조 38년(1605), 1책

8. 이십공신회맹록-강희십구년(二十功臣會盟錄-康熙十九年), 조선 숙종 20년(1694), 1책

9. 이십일공신회맹록-옹정육년(二十一功臣會盟錄-雍正六年), 조선 영조 4년(1728),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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