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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順天 仙巖寺 大雄殿)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01.06.08
소 재 지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 (지번)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선암사
관리자(관리단체) 선암사

조계산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 하였던 것을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고쳐 불렀다. 이후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더욱 크게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공포를 앞뒤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건물 안쪽 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Seonamsa Temple in Jogyesan Mountain, named Biroam by Monk Ado in 529 (the 7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g of Baekje), was renamed Seonamsa by State Preceptor Doseon in 875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eongang of Unified Silla). Later, it became a well-known temple with the help of Monk Uicheon (aka Uigakguksa)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Main Hall of the temple was destroyed by fir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and rebuilt in 1660 (the first year of King Hyeonjong’s reign). It was destroyed again in 1766 (the 42nd year of King Yeongjo’s reign) and rebuilt in 1824 (the 24th year of King Sunjo’s reign). The Main Hall enshrines a Shakyamuni Buddha image. Along with nearby Manseru Hall, it is a central part of the temple. In the front yard are three-tiered stone pagodas (Treasure No. 395) standing side by side. The main hall (measuring 3 kan* by 3 kan) has minheullim columns (narrower at the top than at the base) supported by natural cornerstones. The top of the columns is adorned with dragon head-shaped ornaments. The building, which has a hip and gable roof with gongpo designed to hold up the roof's eaves on a pillar, is set up not only on the pillars but also between them. The interior structure is finished with lotus bud-shaped ornaments, displaying the gorgeous and ornamental techniques of the late Joseon Period (1392-1910). The building is deemed academically and historically valuable since it showcases the architectural style prevalent in the later Joseon Period when it was renovated.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曹溪山仙岩寺在百济圣王7年(529)被阿道和尚定名为毗卢庵,统一新罗宪康王5年(875)道诜国师改称仙岩寺。据说高丽时代大觉国师义天又大举扩建,使此寺成为大伽蓝。大雄殿在朝鲜时期丁酉再乱(1597)中被烧毁,显宗1年(1660)重建。英祖42年(1766)再度被烧毁,纯祖24年(1824)再次重建并延续至今。供奉释迦摩尼佛的大雄殿是仙岩寺的中心法堂,与前面的万岁楼形成主轴,前面的院子里并排矗立着两座三层石塔(宝物第395号)。仙岩寺大雄殿沿袭了多包系的普遍手法,但华丽的建筑样式和装饰性又充分保存了朝鲜后期重建当时的面貌,具有重要的学术及历史价值。

曹渓山仙岩寺は、百済時代の聖王7年(529)に阿道和尚が毘盧庵と名づけたものを、統一新羅の憲康王5年(875)に道詵国師が仙岩寺と呼び直したものである。その後高麗時代の大覚国師・義天がより大きくして、大伽藍を成したと伝えられている。大雄殿は朝鮮時代の丁酉再乱(1597)の際に火災で焼けてしまい、玄宗1年(1660)に再建された。その後英祖42年(1766)に再び焼けてしまったが、純祖24年(1824)に建て直して現在に至っている。釈迦牟尼仏を祭った大雄殿は仙岩寺の中心法堂で、その前にある万歳楼と主軸をなしており、前庭には三重石塔(宝物第395号)2基が並んでいる。仙岩寺大雄殿は多包系の一般的な手法に従っているが、華麗な建築様式と装飾性は朝鮮後期に重建した当時の様子を良く表しており、学術的・歴史的にも重要な価値がある。

조계산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 하였던 것을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고쳐 불렀다. 이후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더욱 크게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공포를 앞뒤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건물 안쪽 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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