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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295호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槐山 覺淵寺 通一大師塔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9.06.23
소 재 지 충청북도 괴산군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각***
관리자(관리단체) 각***

고려 전기의 승려인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비로, 각연사 동남쪽의 보개산 계곡을 따라 1㎞쯤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대사는 고려 전기에 중국유학을 다녀온 이로, 그가 왕실에서 불교의 교리를 강의하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다. 거북받침돌은 등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오면서 나타나게 되는 양식상의 특징이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해서체인데, 원래 새겨진 3,500자 가운데 현재는 대부분이 깍여 260자 정도만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머릿돌의 네 면에는 4마리의 용을 웅장하게 새겨 놓았는데, 그 용들이 머리를 들어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받도록 하였다.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석비중의 하나로, 고려 광조 9년(958)에 건립되었다. 받침돌에 새긴 거북머리의 양식상 변화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은 당시 석비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The stele contains records about the deeds of Monk Tongil, who carried out activities in the early Goryeo Period (918-1392). It is located at the foot of a hill about 1km southeast of Gagyeonsa Temple in Goesan. When he returned home after studying in China and gave a lecture on Buddha’s teachings for the people of the Royal Family, a crowd of people gathered to attend. Upon his death, King Gwangjong presented him with the honorary title Tongil and had famed writer Kim Jeong-eon write an epitaph for his tombstone. The stele is composed of a tortoise-shaped platform, the body, and the capstone. The head of what looks like the body of a tortoise is actually the head of a dragon, which was a feature of a change in the style made between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676 - 935) and the early Goryeo Period (918-1392). The Chinese characters inscribed on the body have been weathered; thus, only about 260 of the 3,500 are now legible. Each side of the square capstone contains the image of a magnificent-looking dragon. The four dragons hold up their heads to support a lotus-shaped bead at the center. As one of the few olden-day steles existing in their original location and in good condition, it was set up in 958 (the 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jo of Goryeo). Each part of the stele showcases the excellent workmanship of that period.

记录高丽前期的僧侣通一大师的生平事迹的碑,矗立在距觉渊寺东南面宝盖山溪谷一公里的半山腰上。通一大师曾在高丽前期前往中国留学,据说在王室内讲授佛教教理时,听众从四方云集而来。大师圆寂后光宗赐予其“通一大师”的谥号,并命当时的文学家金廷彦撰写碑文。此碑是为数不多的在原本位置上保持原貌的石碑之一,建于高丽光祖9年(958)。基石上雕刻的龟头装饰变化和各部分的雕刻手法都展示了当时石碑的优越性。

高麗前期の僧侶である通一大師の行跡を記録している碑で、覚淵寺の東南側の宝蓋山の渓谷に沿って1kmほど離れた山腹に位置している。通一大師は高麗前期に中国に留学した経験を持っており、彼が王室で仏教の教理を講義すると各地から大勢の人が雲のように集まったという。大師が入寂した後に、光宗は「通一大師」という贈り名を与え、当代の文章家であった金廷彦に碑文を作るように命じた。高麗光宗9年(958)に建立され、元の場所に原形のまま保存されている数少ない石碑の一つである。台石に刻まれた亀の頭の様式上の変化や各部分に刻まれた彫刻の手法は、当時の石碑の優秀さを感じさせる。

고려 전기의 승려인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비로, 각연사 동남쪽의 보개산 계곡을 따라 1㎞쯤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대사는 고려 전기에 중국유학을 다녀온 이로, 그가 왕실에서 불교의 교리를 강의하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다. 거북받침돌은 등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오면서 나타나게 되는 양식상의 특징이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해서체인데, 원래 새겨진 3,500자 가운데 현재는 대부분이 깍여 260자 정도만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머릿돌의 네 면에는 4마리의 용을 웅장하게 새겨 놓았는데, 그 용들이 머리를 들어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받도록 하였다.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석비중의 하나로, 고려 광조 9년(958)에 건립되었다. 받침돌에 새긴 거북머리의 양식상 변화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은 당시 석비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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