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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110-1호

정몽주 초상 (鄭夢周 肖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정(등록)일 1991.12.16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임*** 
관리자(관리단체) 국***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고려시대 충신 정몽주(1337∼1392)의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98㎝, 세로 169.5㎝이다. 정몽주의 호는 포은으로 고려말 혼란기에 정승에 올랐으며, 이성계 추대에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단심가’는 고려에 대한 그의 충절이 담겨져 있다.

이 초상화는 임고서원(臨皐書院)에 있는 3점의 정몽주 초상화 가운데 하나로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숭정기사모본’이라 쓰여 있는 것이다. 관리들이 쓰는 모자와 엷은 청색의 관복을 입고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이다. 옷주름 표현은 청색선을 이용하여 묘사하였으며 돗자리나 배경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 초상화는 인조 7년(1629)에 김육이 비단 위에 새로 옮겨 그린 것으로, 비단이 많이 헐었으나 옛 그림화풍이 잘 나타나 있으며 3점의 포은 초상화 중 연대가 두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Jeong Mong-ju (1337-1392, pen-name: Poeun) was a civil official and an eminent scholar during the time of political chaos in the late Goryeo Period. As a chancellor, he managed all public affairs reasonably and impartially but was assassinated later at the plotting of Yi Bang-won because he opposed the movement of crowning Yi Seong-gye as king of the new dynasty. His poem Dansimga (Song of a Loyal Heart) shows very well his loyalty to the Goryeo Dynasty. This portrait is one of the three portraits of Jeong Mong-ju kept at Imgoseowon Confucian Academy, and it measures 98 cm wide and 169.5 cm long. In this full-size portrait, Jeong Mong-ju is sitting on a chair wearing light blue official robes as well as an official hat. The wrinkles on the clothes are depicted with blue lines, but not the carpet and background. It is badly damaged because the silk has worn out. Nonetheless, it still clearly shows the old painting style and has high value as the oldest portrait among the three portraits of Jeong Mong-ju.

高丽时代忠臣郑梦周(1337~1392)的肖像画,长169.5厘米、宽98厘米。郑梦周号圃隐,高丽末代混乱时期官至政丞,因反对拥戴李成桂,被李芳远赐死。他的《丹心歌》表现了对高丽的忠贞不渝。此肖像画是仁祖7年(1629)金堉在绸缎上重新临摹而成,绸缎破旧、毁损严重,但是此画充分展现了昔日画风,在三幅圃隐肖像画中年代最久远,是一件重要的作品。

高麗時代の忠臣であった鄭夢周(1337~1392)の肖像で、大きさは横98㎝、縦169.5㎝である。鄭夢周の号は圃隠で、高麗末の混乱期に大臣になり、李成桂が王になるのを反対したため李芳遠によって殺される。彼の「丹心歌」には、高麗に対する彼の忠節が込められている。この肖像は仁祖7年(1629)に金堉がシルクの上に新しく書き写したもので、シルクが古くなって、毀損が激しい状態である。しかし、当時の絵の画風がよく現れており、3点の圃隠肖像画の中で年代が最も古いものであるため、重要な作品と言える。

고려시대 충신 정몽주(1337∼1392)의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98㎝, 세로 169.5㎝이다. 정몽주의 호는 포은으로 고려말 혼란기에 정승에 올랐으며, 이성계 추대에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단심가’는 고려에 대한 그의 충절이 담겨져 있다.

이 초상화는 임고서원(臨皐書院)에 있는 3점의 정몽주 초상화 가운데 하나로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숭정기사모본’이라 쓰여 있는 것이다. 관리들이 쓰는 모자와 엷은 청색의 관복을 입고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이다. 옷주름 표현은 청색선을 이용하여 묘사하였으며 돗자리나 배경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 초상화는 인조 7년(1629)에 김육이 비단 위에 새로 옮겨 그린 것으로, 비단이 많이 헐었으나 옛 그림화풍이 잘 나타나 있으며 3점의 포은 초상화 중 연대가 두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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