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보물 제850-3호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과학기술 / 천문지리기구 / 지리
수량/면적 22첩
지정(등록)일 2008.12.22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103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림동,서울대학교)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대동여지도』의 여러 이본 중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지도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생몰년 미상)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이 지도는 조선의 지도 발달에서 정점에 있으면서 고지도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의 남북을 22첩으로 나누어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제작하여 모두를 아래 위로 맞추면 전국지도가 된다. 지도의 제1첩에는 방안표, 범례인 지도표와 지도유설, 경도오부지도 등과 함께 조선의 최북단인 온성(穩城), 종성(鐘城), 경원(慶源) 일대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유설」에서는 중국의 지도와 지리지의 기원을 말하고 그것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경제·국방·학문연구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와 지리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그 편찬목적을 밝히고 지도제작에 있어 정확한 측정원리를 제시하였다.

지도의 각 첩에서 한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포괄하고 있다. 목판은 2면을 담고 있으며, 양면에 판각되어 있다. 지도를 제작하는데 약 70장 내외의 목판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2첩을 함께 합치면 남~북 약 6.7m 동~서 3.8m의 대형 지도가 되며 축적은 약 16만분의 1로 알려져 있다.

지도에는 해안선 도서, 산과 하천의 지형, 지방 군현 등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각 군현간을 잇는 도로에는 10리마다 방점이 찍혀 있어 군현간 거리 측정이 가능하다. 각 군현 안에서는 영아(營衙), 읍치(邑治), 성지(城池), 진보(鎭堡), 창고(倉庫), 목소(牧所), 봉수(烽燧), 능침(陵寢), 방리(坊里), 고현(古縣), 고진보(古鎭堡), 고산성(古山城), 도로(道路) 등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는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오직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펴내는 데에만 일생을 바쳤다. 지리지로서 『여도비지』,『동여도지』, 『대동지지』를 편찬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구도』(1834)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와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여러 해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이전의 필사본 지도와는 다르게 목판본으로 제작함으로써 지리정보가 사회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지도는 철종 12년(1861)에 처음 찍어낸 뒤 고종 1년(1864)에 다시 재판되었다. 초판과 재판의 간행부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30여점이 넘는 판본이 국내외에 소장된 것으로 볼 때 적지 않게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축적 약 90만분의 1의 『대동여지전도』는 이 지도를 축쇄하여 만들어 보급된 것이다.

『대동여지도』중 갑자본은 국내에 경상남도 거창박물관본이 있으며 국외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 매우 드물다. 특히 규장각 소장본의 경우 갑자본으로는 가장 상태가 좋으며 완질로 갖추어진 것으로 그 가치가 높다. 신유본에 비해 내용도 일부 수정된 것이 확인되어 김정호가 1861년 지도를 제작한 후에 내용을 지속적으로 수정하였음을 보여준다.

This map made in 1861 by a great cartographer of late Joseon Kim Jeong-ho (c. 1804 - c. 1866) shows geographic and administrative features of entire Korea in the 19th century. The map is printed from 70 woodblocks and its scale is about 1:160,000. The map consists of 22 booklets which divide the country by 120 li—each li being about 400 meters—from north to south and by 80 li from east to west. With all the booklets connected, it becomes a huge map of 660 centimeters in length and 410 centimeters in width. The map is in the format of a concertina book and easily portable when folded despite the massive size. Daedong yeojido is marked by, among others, the use of markings for every ten li of a road to measure its distance, and a variety of keys to provide a wealth of geographic information. The map is also highly regarded for that it is a work of woodblock printing that enabled mass production and wide circulation among the public. The map in the Gyujanggak collection is one of the two best preserved among all the Sinyu Year (i.e. 1861) prints remaining today, the other (Treasure No. 850) being that collected by the Sungshin Women’s University Museum, with a complete set of 22 booklets.

大东舆地图是古山子金正浩(1804?-1866?)在朝鲜哲宗12年绘制的我国传统地图中最优秀的地图。将我国整体分为南北120里,间距划分为22层,各层相应地区的地图各自编成一册。奎章阁韩国学研究院所收藏的这幅大东舆地图是甲子本,是其中保存状态最好的一幅,作为完帙本,与已指定的大东舆地图(宝物第850号,诚信女子大学博物馆所藏)的辛酉本同样具有很高价值。

大東輿地図は、古山子金正浩(1804?~1866?)が朝鮮哲宗12年に制作した伝統地図の中で最も優れた地図である。国全体を南北120里間隔で22層に分け、各層に該当する地域の地図を各々一冊の本に編んだものである。奎章閣韓国学研究院所蔵のこの大東輿地図は、既指定の大東輿地図(宝物第850号、誠信女子大学博物館所蔵)の辛酉本と共に甲子本としては最も状態が良く、完帙本という点でその価値が高い。

『대동여지도』의 여러 이본 중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지도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생몰년 미상)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이 지도는 조선의 지도 발달에서 정점에 있으면서 고지도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의 남북을 22첩으로 나누어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제작하여 모두를 아래 위로 맞추면 전국지도가 된다. 지도의 제1첩에는 방안표, 범례인 지도표와 지도유설, 경도오부지도 등과 함께 조선의 최북단인 온성(穩城), 종성(鐘城), 경원(慶源) 일대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유설」에서는 중국의 지도와 지리지의 기원을 말하고 그것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경제·국방·학문연구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와 지리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그 편찬목적을 밝히고 지도제작에 있어 정확한 측정원리를 제시하였다.

지도의 각 첩에서 한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포괄하고 있다. 목판은 2면을 담고 있으며, 양면에 판각되어 있다. 지도를 제작하는데 약 70장 내외의 목판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2첩을 함께 합치면 남~북 약 6.7m 동~서 3.8m의 대형 지도가 되며 축적은 약 16만분의 1로 알려져 있다.

지도에는 해안선 도서, 산과 하천의 지형, 지방 군현 등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각 군현간을 잇는 도로에는 10리마다 방점이 찍혀 있어 군현간 거리 측정이 가능하다. 각 군현 안에서는 영아(營衙), 읍치(邑治), 성지(城池), 진보(鎭堡), 창고(倉庫), 목소(牧所), 봉수(烽燧), 능침(陵寢), 방리(坊里), 고현(古縣), 고진보(古鎭堡), 고산성(古山城), 도로(道路) 등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는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오직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펴내는 데에만 일생을 바쳤다. 지리지로서 『여도비지』,『동여도지』, 『대동지지』를 편찬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구도』(1834)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와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여러 해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이전의 필사본 지도와는 다르게 목판본으로 제작함으로써 지리정보가 사회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지도는 철종 12년(1861)에 처음 찍어낸 뒤 고종 1년(1864)에 다시 재판되었다. 초판과 재판의 간행부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30여점이 넘는 판본이 국내외에 소장된 것으로 볼 때 적지 않게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축적 약 90만분의 1의 『대동여지전도』는 이 지도를 축쇄하여 만들어 보급된 것이다.

『대동여지도』중 갑자본은 국내에 경상남도 거창박물관본이 있으며 국외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 매우 드물다. 특히 규장각 소장본의 경우 갑자본으로는 가장 상태가 좋으며 완질로 갖추어진 것으로 그 가치가 높다. 신유본에 비해 내용도 일부 수정된 것이 확인되어 김정호가 1861년 지도를 제작한 후에 내용을 지속적으로 수정하였음을 보여준다.

내레이션

  •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