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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60호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崔希亮 壬亂關聯 古文書)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관부문서 / 첩관통보류
수량/면적 1첩, 12건
지정(등록)일 1979.07.26
소 재 지 전라남도 나주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최***
관리자(관리단체) 국***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 첩보서목(崔希亮 壬亂關聯 古文書 - 捷報書目)은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당시 흥양(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현감으로 있던 일옹 최희량(1560∼1651)이 당시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 장군과 전라도 관찰사에게 왜적을 격파한 전과보고 문서이다.

최희량은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전관으로 활약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의 부하로 있으면서 많은 전공을 세워 후에 원종공신에 올랐다.

원래는 따로 흩어져 있던 것을 공의 후손인 최기정이 서목의 뒤에 19절지로 배접하여 첩으로 만들었다. 이 첩책 표지에 최기정이 ‘최일옹파왜보첩원본’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각 문건마다에 백지 또는 붉은 종이를 표지로 붙여 내용분류를 쉽게 하였다.

이 문건의 내용은 현지에서 작성한 전과보고서로, 그 여백에 상관이 회답을 적어보내는 형태의 당시 공문서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또한, 왜적들과 싸워 크게 승전을 거둔 전말을 담고 있어 다른 기록에는 있지 않은 귀중한 사실이 이 서목을 통해 새로이 밝혀졌다.

이것은 당시 공문서의 양식을 살필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宣祖31年(1598)壬辰倭乱当时,兴阳(现在的全罗南道高兴郡)县监逸翁崔希亮(1560~1651)向时任全罗水军节度使的李舜臣将军和全罗道观察使呈送击败倭寇的一些战果报告文书。崔希亮武科及第并在壬辰倭乱爆发后担任宣传官,丁酉再乱时期任李舜臣的部下,立下许多战功,后来提升为原从功臣。这些文件的内容是现场记录的战果报告书,当时上官在空白处批示回复的公文样式也保存完好。还记载了抗战倭寇取得大捷的始末,此书目内记载有其他记录里查找不到在的珍贵事实。此物是了解当时公文样式的非常稀贵的资料。

これは宣祖31年(1598)壬辰倭乱当時に、興陽(今の全羅南道高興郡)懸監であった逸翁崔希亮(1560~1651)が、全羅水軍節度使であった李舜臣将軍と全羅道観察使に倭敵を撃破したと戦果を報告した文書である。崔希亮は武科試験に及第し、壬辰倭乱の発生後は宣伝官として活躍した人である。丁酉再乱の時は李舜臣の部下として多くの功を立て、原従功臣の官職にまで就いた。この文の内容は現地で作成した戦果報告書で、その空白に上官が回答を送るといった形の当時の公文書様式をそのまま残している。また、倭敵と戦って大きく勝利した経緯を含んでおり、他の記録にはない貴重は事実をこの書目から新しく確認できたのである。これは、当時の公文書の様式を調べるための非常に珍しい資料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 첩보서목(崔希亮 壬亂關聯 古文書 - 捷報書目)은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당시 흥양(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현감으로 있던 일옹 최희량(1560∼1651)이 당시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 장군과 전라도 관찰사에게 왜적을 격파한 전과보고 문서이다.

최희량은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전관으로 활약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의 부하로 있으면서 많은 전공을 세워 후에 원종공신에 올랐다.

원래는 따로 흩어져 있던 것을 공의 후손인 최기정이 서목의 뒤에 19절지로 배접하여 첩으로 만들었다. 이 첩책 표지에 최기정이 ‘최일옹파왜보첩원본’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각 문건마다에 백지 또는 붉은 종이를 표지로 붙여 내용분류를 쉽게 하였다.

이 문건의 내용은 현지에서 작성한 전과보고서로, 그 여백에 상관이 회답을 적어보내는 형태의 당시 공문서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또한, 왜적들과 싸워 크게 승전을 거둔 전말을 담고 있어 다른 기록에는 있지 않은 귀중한 사실이 이 서목을 통해 새로이 밝혀졌다.

이것은 당시 공문서의 양식을 살필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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