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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99호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襄陽 洛山寺 七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8.12.19
소 재 지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낙산사 (전진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낙산사
관리자(관리단체) 낙산사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基壇部)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머리장식부에는 찰주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The seven-story stone pagoda at Naksansa Temple was originally built as a three-story pagoda but it was rebuilt with its present appearance in 1467,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jo of the Joseon Dynasty. During the time of its reconstruction, it is said that a Buddhist rosary and a cintamani were sealed inside. With the change of the governing ideology from Buddhism, which had had a thousand year long history as the state religion, to Confucianism at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1392 -1910), Buddhism went into a decline. However, there was no way to stop the formative arts related to Buddhist from disappearing, and so remnants of the Goryeo Dynasty still remained in the early days of Joseon. Therefore, some works in the style of Goryeo and showing the same workmanship were made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This pagoda is one example of a Goryeo style pagoda built during early Joseon. The foundation on the square ground stone is carved with 24 lotus petals. The main body is composed of seven stories of core stones and roof stones. A particular feature is a single layer of wide, thick supporting stone placed on the core stone of each story. The square roof stones slope gently and curve swiftly upwards at their corners. The finial, including a long iron stick, which has survived well, is similar to ones found on the Lama Pagodas built during the Yuan Dynasty of ancient China. In general, this pagoda follows the style of Goryeo Dynasty pagodas, but it was built in a much simpler way than they were. The main body can be compared with those of other pagodas such as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Sinboksa Temple Site, Gangneung (Treasure No. 87) and the Octagonal Nine-story Ston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Pyeongchang (National Treasure No. 48).

此塔创建之初只有三层,世祖13年(1467)建成如今的七层石塔,并传将水晶念珠和如意珠置于塔内供奉。朝鲜时期开始把儒教作为统治思想,由此佛教这一盛行了千余年的国教开始走向衰退。与此同时,佛教相关的造型美术领域也随之萎缩,朝鲜前期的佛教美术中尚存一些采用高丽时期建造样式和手法的作品。洛山寺七层石塔便是高丽时代余韵尚存的石塔之一。虽然继承了高丽时代的风格,但整体造型更为简化。与附近溟州郡的正东津里五层石塔的莲花纹样基坛装饰、江陵神福寺址三层石塔、月精寺八角九层石塔等的塔身部分有可比性。

この石塔は、創建当時三重であったものを世祖13年(1467)に現在の七重に造成した塔である。その際水晶で作った念珠と如意宝珠を塔内に奉安したという。朝鮮は儒教を統治理念にしたので、千余年以上国教として座を守ってきた仏教は衰退するしかなかった。それと同時に、仏教関連の造形美術分野も萎縮して行ったが、そうした中でも、朝鮮前期には仏教美術分野で造成様式や手法が高麗時代のものに近い作品がかなり造成された。洛山寺七重石塔も、高麗時代の余韻が残る石塔の中の一つでる。高麗時代の様式を受け継いでいるが、全体の造形は更に簡略化されている。近くの溟州郡に位置した正東津里五重石塔の蓮華模様の基壇装飾と、江陵神福寺址三重石塔・月精寺八角九重石塔などの塔身部と比較できる。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基壇部)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머리장식부에는 찰주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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