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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83호

창덕궁 돈화문 (昌德宮 敦化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와룡동) / (지번)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2-77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돈화(敦化)’라는 말은 원래 중용에서 인용한 것으로 ‘공자의 덕을 크게는 임금의 덕에 비유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여기에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보물 제 383호인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1412년 5월에 세워졌으며, 1609년(광해원년)에 중수(重修)했다고 한다.

돈화문에는 원래 현판이 없다가 성종 때 서거정에게 분부하여 이름을 지어서 걸게 하였다.

2층 문루에는 종과 북이 있어 정오(正午)와 인정(人定), 파루(罷漏)에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정오를 알리기 위해 북을 치는데 이것을 오고(午鼓)라고 하며, 인정은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28번 종을 치는 것이고, 파루는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해 33번의 종을 치는 것을 말한다.

돈화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남향 건물이고, 좌우 협칸을 벽체로 막아 3문형식 이다. 중앙은 어문으로 왕의 전용 문이고, 좌우문은 당상관이상 높은 관료가 드나들던 문이지만, 3사(三司: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언관은 관직은 낮아도 좌우 문을 드나들게 한 특별한 혜택이 있었다.

Donhwamun Gate is the front gate of Changdeokgung Palace, one of the five major palaces in Joseon. It was constructed in May, 1412, the 12th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ng and burned down in Japanese Invasion of 1592. The gate was rebuilt together with Changdeokgung Palace in the 1st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1609). It is a two-story building with five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in the front and two kan at the side, and it has a hip roof, called ujingakjibung, showing a trapezoid shape when viewed from the front. The weight of the roof is supported by column heads on top of and also between the pillars. This is called dapo (multiple column-heads) style. The three kan in the center of the first floor have two doors each but the kan at either end are blocked by the wall. According to a record in the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a bronze bell was hung at the door in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ng (1413), but since the gate has been rebuilt, this can only be imagined. Donhwamun Gate, like Sungnyemun Gate (Namdaemun) and Honghwamun Gate (the front gate of Changgyeonggung Palace), is a cultural asset important for researching the construction style of gates built at the height of the Joseon Dynasty.

敦化门是朝鲜时代五大宫之一昌德宫的正门。昌德宫建于朝鲜太宗12年(1412),壬辰倭乱时期被大火烧毁,光海君即位之年(1608)重建,此门亦为当时修建。如今这座建筑物前面的地面因铺路施工变高,此门也略被掩埋。根据«朝鲜王朝实录»记载,太宗13年(1413)曾在门上悬挂铜钟。在门上挂钟的情况较为罕见,但此门是后来重建的,因此只能通过记录来了解其原貌。敦化门与昌庆宫的正门弘化门都是为了展示朝鲜时代宫殿的威严而建,是展现门楼建筑样式的重要建筑物。

敦化門は、朝鮮時代五大宮の一つである昌徳宮の正門である。朝鮮太宗12年(1412)に建てられ、壬辰倭乱の時燃やされたのを光海君即位年(1608)に昌徳宮を建て直す時、門も共に建てられた。現在の建物の前側は、道路舗装工事により地面が高くなって若干埋もれている。『朝鮮王朝実録』によると、太宗13年(1413)門に銅鐘を掛けたという記録がある。門に鐘を掛けたというのは珍しい例であるが、現在ある門は建て直したものであるため、実録を通じてのみ知ることができる。敦化門は、昌慶宮の正門である弘化門と共に、朝鮮時代の宮の威厳を保つために建てられた門楼の建築様式を表わしている重要な建築物である。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돈화(敦化)’라는 말은 원래 중용에서 인용한 것으로 ‘공자의 덕을 크게는 임금의 덕에 비유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여기에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보물 제 383호인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1412년 5월에 세워졌으며, 1609년(광해원년)에 중수(重修)했다고 한다.

돈화문에는 원래 현판이 없다가 성종 때 서거정에게 분부하여 이름을 지어서 걸게 하였다.

2층 문루에는 종과 북이 있어 정오(正午)와 인정(人定), 파루(罷漏)에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정오를 알리기 위해 북을 치는데 이것을 오고(午鼓)라고 하며, 인정은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28번 종을 치는 것이고, 파루는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해 33번의 종을 치는 것을 말한다.

돈화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남향 건물이고, 좌우 협칸을 벽체로 막아 3문형식 이다. 중앙은 어문으로 왕의 전용 문이고, 좌우문은 당상관이상 높은 관료가 드나들던 문이지만, 3사(三司: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언관은 관직은 낮아도 좌우 문을 드나들게 한 특별한 혜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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