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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60호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시 대 통일신라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립중앙박물관

충청북도 제천군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터에 전해오던 탑비로, 1922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원랑선사(?∼866)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랑선사는 문성왕 18년(856)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물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이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려, 김영에게 비에 새길 글을 짓게 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의 해서체로 순몽이 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형식화된 조형이다. 머릿돌에 새긴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다.

전체적으로 탑비의 머리·몸·받침 각 부분의 비례감이 훌륭한 비로서, 단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원랑선사가 돌아가신 후 진성여왕 4년(890)에 세워졌다.

Originally located at the Wolgwangsa Temple site in Dongchang-ri, Hansu-myeon, Jecheon-gun, Chungcheongbuk-do, this stele was moved to Gyeongbokgung Palace in 1922, and now it stands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t records the achievements of Master Wonrang (?~866), a monk of the late Unified Silla Dynasty. He travelled to Tang Dynasty China in the 1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seong (856), and stayed in Wolgwangsa Temple after making a tour of noted mountains over 11 years. After Wollang entered Nirvana at the age of 68, King Heongang ordered the erection of a memorial stone and called it ‘Daebogwangseon’. He also ordered Kim Yeong to compose the epitaph, and Sunmong inscribed the letters in the Ouyang Xun style in regular script. This stele consists of three parts, the pedestal, the body and the capstone. Pedestals were generally made in the form of a tortoise, while a hornless dragon was engraved on the capstone. It was the style of late Unified Silla that the tortoise shaped pedestal had quite small feet and a stretched out head and neck. The statue on the ornamental top looks quite realistic. Overall, the capstone, body and pedestal are so balanced that the stele gives a simple and stable impression. It was erected in 890, the 4th year of the reign of Queen Jinseong, after Wollang passed away.

塔碑原本位于忠清北道堤川郡寒水面东仓里月光寺址内,1922年迁至景福宫,现位于国立中央博物馆境内,记录了统一新罗后期僧侣圆朗禅师(?-866)生平事绩。整体上看来,塔碑的碑首、碑身和基台各部分比例协调、端庄稳定。塔碑修建于圆朗禅师圆寂后的真圣女王4年(890)。

忠清北道堤川郡寒水面東倉里の月光寺跡にあった塔碑で、1922年景福宮に移され現在は国立中央博物館境内にある。統一新羅後期の僧侶である円朗禅師の行跡が記録されている塔碑である。全体的に塔碑の頭・胴体・台の各部分の比例感が素晴らしい碑であり、端麗かつ安定感がある。塔碑は円朗禅師が亡くなってから真聖女王4年(890)に建てられた。

충청북도 제천군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터에 전해오던 탑비로, 1922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원랑선사(?∼866)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랑선사는 문성왕 18년(856)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물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이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려, 김영에게 비에 새길 글을 짓게 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의 해서체로 순몽이 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형식화된 조형이다. 머릿돌에 새긴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다.

전체적으로 탑비의 머리·몸·받침 각 부분의 비례감이 훌륭한 비로서, 단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원랑선사가 돌아가신 후 진성여왕 4년(890)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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