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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13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6-1 (월남리) / (지번)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13-1,815-1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강진군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Located at the site of Wollamsa Temple, this stele was erected to cherish the memory of State Preceptor Jingak who founded Wollamsa Temple in the mid-Goryeo period, though the date is not certain. The history since the temple’s foundation has not been recorded or passed on. The name of Jingak was Choe Hye-sim. He passed the state civil examination when he was 24 years old, but following his mother's death, he became a monk. After leading an ascetic life under Master Bojo, he became the prime Master when King Gojong acceded to the throne. In 1234, the 21st year of the reign of King Gojong, he entered Nirvana at 57 years of age. It seems as if the stone turtle is carrying the memorial stone on its back. Supporting the stone, the turtle, stretching out its neck with a bead in its mouth, places its four feet on the ground. It looks strong and realistic. Realistically carved claws and an elaborately detailed head and neck with a well-balanced body distinguish the turtle statue. The body of the stele itself used to be imposing, but now only the bottom portion remains. The surface is so worn that it is hard to recognize the epitaph, which was written by Yi Gyu-bo, a noted writer of the period. It is assumed to have been erected at the time of King Gojong of Goryeo.

月南寺是高丽中期在真觉国师的主持下创建的寺院,创建以后的记录没有留存。真觉国师姓崔名慧谌,24岁考中司马试,但因母亲去世出家。出家后在普照禅师门下修道,高宗即位后任大禅师,高宗21年(1234)圆寂,享年57岁。此碑位于月南寺址内,用于追思创建此寺的真觉国师。文化财名称变更(2002.03.12):月南寺址石碑→月南寺址真觉国师碑。理由:月南寺址石碑是月南寺创建人真觉国师(1178-1234)之碑,李圭报(1168-1241)撰写碑文,通过«新增东国与地胜览»(1530)记录得以确认,1973年解读阴记并确认此碑为真觉国师碑,因此决定命名为«月南寺址真觉国师碑»。

月南寺は高麗中期に真覚国師によって創建された寺院で、創建後の記録は伝えられていない。真覚国師の姓は崔氏、名前は恵諶で、24歳で司馬試に合格したが、母の死で出家することになった。出家後は普照禅師の下で修道し、高宗が王位に昇ると大禅師になり、高宗21年(1234)に57歳で入寂した。月南寺址にあるこの碑は、創建した真覚国師を追慕するために建てられたものである。文化財名称変更(2002.03.12.):月南寺址石碑→月南寺址真覚国師碑 事由:月南寺址石碑は月南寺の創建主である真覚国師(1178~1234)の碑で、李奎報(1168~1241)が碑文を作った。『新増東国与地勝覧』(1530)の記録と、1973年陰記の判読などを通じて、真覚国師碑であることが確認され、「月南寺址真覚国師碑」と命名することにする。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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