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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07호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 (扶餘 普光寺址 大普光禪寺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동남리)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립부여박물관

부여군 임천면에 있던 보광사(普光寺)의 중창을 기념하여 건립한 비석으로 중창을 주도한 원명국사(圓明國師) 충감(沖鑑 : 1275~1339)의 행적과 중창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충남 부여군 성주산의 보광사터에 있던 것을 1963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비문은 2차에 걸쳐 새겼는데, 앞면은 건립당시인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새겼고 뒷면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추가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하여 선원사에서 뜻을 펴오다가 공민왕 원년(1351) 65세로 입적하였다. 죽으면서 문도들에게 비나 탑을 세우지 않도록 당부하여 6년이 지나서야 비가 세워졌다. 뒷면의 추가된 기록에는 임진왜란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기록을 적은 비도 알아볼 수 없으므로 주지인 석능일이 고쳐 새긴다고 되어있다.

현재 비받침과 비머릿돌이 없고, 비몸만 남아있다. 비몸의 가장자리는 덩굴무늬를 띠 모양으로 둘러 새겼다. 석재는 편마암이고 윗쪽의 양끝을 사선으로 잘라냈다. ‘보광사중창비’라고도 하는 이 비는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석비양식과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This stele was erected at Bogwangsa Temple for Great Master Bogwang (State preceptor Wonmyeong) who is credited with having renovated and expanded the temple. It was originally located in Seongjusan Mountain, Buyeo of Chungcheongnam-do but was moved to the Buyeo National Museum in 1963. The inscriptions of the stele were written on two different occasions; the one on its front was inscribed in 1358 (the 7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ongmin of the Goryeo Dynasty) when the stele was erected, with the other on the back added in 1750 (the 2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Yeongjo of the Joseon Dynasty).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of the stele, state preceptor Wonmyeong became a priest when he was 19, serving at Seonwonsa Temple until he died there at the age of 65 in 1351 (the 1st year of the reign of King Gongmin of the Goryeo Dynasty). It states that, since he left a will stipulating that his disciples should not erect his stele, this stele was not made until 6 years after his death. Moreover, the inscription on the back says that the temple was rebuilt after it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hat the stele was inscribed again by Seok Neung-il, the head monk of the temple at the time. Only the body of the stele, made of granite whose top edges are cut, remains without the pedestal and capstone on top. Vined designs are engraved to adorn the edges of the memorial stone. Also called "Stele to Commemorate the Restoration of Bogwangsa Temple," this stele is a good material for studying the simplified stele style of the late Goryeo Dynasty and the Buddhist history.

铭文记录了高丽时代使普光寺兴盛起来的元明国师的功绩。原本位于忠南扶余郡圣柱山的普光寺址,1963年迁至国立扶余博物馆保存。碑文分两次铭刻,正面刻于建造当时的恭愍王7年(1358),背面刻于朝鲜英祖26年(1750)。现在碑座和碑首已消失,引进、仅存碑身。碑身边缘环绕雕刻了卷叶式藤纹带。石材为片麻岩,上方两端沿斜线状切割。此碑又称“普光寺重创碑”,是研究高丽后期简化石碑样式和佛教史的重要资料。

高麗時代に普光寺を大いに興した円明国師の功績をたたえる為に建てられた碑である。元々は忠南扶余郡聖住山の普光寺址にあったものを、1963年国立扶余博物館に移して保管した。碑文は二回にかけて刻まれており、前面は建てられた時の高麗恭愍王7年(1358)に刻まれ、後面は朝鮮英祖26年(1750)に二回目の文が刻まれた。碑台と碑蓋はなく、現在残っているのは碑身のみである。碑身のへりには蔓の模様が施されている。石材は片麻岩で上部分の両端を斜線で切り取ってある。『普願寺重創碑』とも呼ばれるこの碑は、高麗時代後期の簡略化された石碑様式と仏教史研究によい資料であるる。

부여군 임천면에 있던 보광사(普光寺)의 중창을 기념하여 건립한 비석으로 중창을 주도한 원명국사(圓明國師) 충감(沖鑑 : 1275~1339)의 행적과 중창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충남 부여군 성주산의 보광사터에 있던 것을 1963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비문은 2차에 걸쳐 새겼는데, 앞면은 건립당시인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새겼고 뒷면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추가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하여 선원사에서 뜻을 펴오다가 공민왕 원년(1351) 65세로 입적하였다. 죽으면서 문도들에게 비나 탑을 세우지 않도록 당부하여 6년이 지나서야 비가 세워졌다. 뒷면의 추가된 기록에는 임진왜란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기록을 적은 비도 알아볼 수 없으므로 주지인 석능일이 고쳐 새긴다고 되어있다.

현재 비받침과 비머릿돌이 없고, 비몸만 남아있다. 비몸의 가장자리는 덩굴무늬를 띠 모양으로 둘러 새겼다. 석재는 편마암이고 윗쪽의 양끝을 사선으로 잘라냈다. ‘보광사중창비’라고도 하는 이 비는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석비양식과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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