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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92호

여주 하리 삼층석탑 (驪州 下里 三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도 여주시 상동 132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여주군

원래는 하리지역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리의 3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얕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즉, 몸돌 윗면의 중앙에 높이 3㎝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려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This three-story stone pagoda was moved from the former site of a temple in the Ha-ri district of Yeoju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58 along with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Chang-ri. The pagoda consists of a single- layer stylobate and a three-story body. The stylobate is engraved with pillars in each corner and the middle of the top stone is carved with two-tier border patterns to support the core stone of the first story. Each core stone and roof stone is made out of a separate piece of stone, each corner of which is carved with pillar patterns. The roof stone has a four-tier cornice. The horizontal eaves curve slightly upward on each edge. Overall, the methodical piling technique and the sense of proportion indicate that it was erected in the mid-Goryeo rather than the early Goryeo period. A unique type of sarira niche was found in the first story of the pagoda during its relocation, i.e. the middle of the upper part of the body is engraved with a 3cm-high band in which two holes are carved. Moreover, the contacting part of the roof stone also has deep grooves. In most pagodas, only the upper part of the body is carved with big holes to contain sarira. However, this pagoda has more holes for sarira than is customary.

原本位于下里地带寺址内,1958年与仓里的三层石塔一同迁往现在的地方,采用了在一才层基坛上面建有三层塔身的形式。迁塔当时值得关注的是从一层塔身石上面中央处发现了形态独特的舍利槽。塔身石表面中央处缠绕着一条高3厘米薄带,其内部凿有两个洞,与此相接的屋顶石底面也凿有深槽。这与通常在塔身石上面凿深槽放置舍利的作法不同,采用了与之完全相反的形式,十分特别。

元々は下里地域の寺址にあったものを、1958年倉里の三重石塔と共に現在の場所に移し、下部分の基壇の上に三重の塔身をのせた。塔を移す際に一層の軸部から独特な形の舎利孔が見つかって、注目されている。すなわち、軸部上面の中央に高さ3cmの浅い帯が巻かれており、その中には二つの穴が空いている。さらに、これに接する屋根石の底面にもこれを配慮したように溝が深く掘られているのである。軸部の上面にだけ溝を作って舎利を安置する一般的なものではなく、正反対の形をしているため独特である。

원래는 하리지역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리의 3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얕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즉, 몸돌 윗면의 중앙에 높이 3㎝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려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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