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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74호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梁山 通度寺 國長生 石標)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조각 / 능묘조각 / 기타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718-44번지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양산시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절의 동남쪽 약 4㎞지점에 서 있다. 국장생이라는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의미로, 거친 자연석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설과 함께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제작된 것으로,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내용이 이두문이 섞인 금석문으로 새겨져 있어 국가와 사찰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Situated about 4km southeast of the temple, this boundary marker with an inscription on its rough surface is one of twelve stone boundary markers (gukjangsaeng) erected to demarcate the boundary of Tongdosa Temple. Gukjangsaeng were generally erected by order of the national government. Stone boundary markers serve as guardian gods, markers, and landmarks, and are deeply connected with folk religion and the theory of geomancy. The stone boundary marker at Tongdosa Temple appears to have been erected to protect the temple from harm as well as serving as a boundary post. Erected in 1085 (the second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ng of the Goryeo Dynasty), this marker contains an inscription stating that it was erected at the order of the national government, and an epigraph in Idu, a writing system in which Chinese characters were borrowed to express Korean sounds. This invaluable information sheds ligh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ment and temples.

以通度寺为中心在四周十二处修建的长生标之一,矗立于寺院东南方约4千米处的粗面自然石。是这座寺的界限标志,国长生的名称是指以国家指令修建的长生柱。长生标修建于高丽宣宗2年(1085),雕刻有奉国家之命而建的记录,雕刻文字是夹杂有吏读文的金石文,是说明国家和寺院关系的重要资料。

通度寺を中心に四方12箇所に建てられた長生標の一つである。寺の東南側の約4㎞地点に、荒れた自然石綿のまま建っている。この寺の境界を表している印の「国長生」という名称は、国の命によって建立された長生という意味である。高麗宣宗2年(1085)に製作されたもので、国の通牒を受けて建てられたという内容が、吏読文が混ざった金石文で刻まれており、国家と寺院との関係を知らせてくれる重要な資料である。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절의 동남쪽 약 4㎞지점에 서 있다. 국장생이라는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의미로, 거친 자연석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설과 함께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제작된 것으로,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내용이 이두문이 섞인 금석문으로 새겨져 있어 국가와 사찰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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