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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9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번지
시 대 통일신라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보령시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Seongjusa Temple was named by King Munseong of the Unified Silla Period when Nanghye, the temple’s head monk, returned from Tang of China and made the temple prosperous. According to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eongjusa Temple was originally named Ohapsa Temple, and was built in the era of King Beop of the Baekje Dynasty. However, it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only the site remains. This five-story pagoda is situated in front of what is conjectured to be the site of the main Buddhist hall of Seongjusa Temple. In addition, three other pagodas of a similar style but different heights stand side by side to the rear of the site. This particular pagoda is composed of a two-story platform and a five-story body. The outline of a column is carved on each side and corner of the platform. A flat stone is placed on the platform to support the body stone. In the case of the body stone, both the main and roof stones are made of a single block of stone. Each corner of the stones features carvings of pole-patterns. The supporting stone of the roof is four-stepped. The line of the angle rafter is horizontal while its edge turns slightly up. The overall form of this elegant pagoda is well-structured and follows the typical style of Unified Silla, although the insertion of a flat stone beneath the body stone is more typical of Goryeo. It has been inferred that the pagoda was made in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据说圣住寺即为«三国史记»里记载的百济法王时期创建的乌合寺,统一新罗文圣王时期从唐朝归来的朗慧和尚任此寺主持后寺庙香火鼎盛,于是国王赐予“圣住寺”的称号。壬辰倭乱时期被烧毁,现在只剩下寺址。整体上采用了统一新罗时代塔的典型风格,但一层塔身石下方单独砌有垫石,是可接续高丽石塔的新样式,推定修建于新罗后期。各层的布局合理,显得非常高雅。

聖住寺は『三国志記』に登場する百済法王時代に創建された烏合寺である。統一新羅文聖王時代に唐から戻った朗慧和尚が、この寺の住職となってから栄えたため、王が「聖住寺」という名を付けたと言われている。しかし、壬辰倭乱の時に燃えてしまい、現在は跡だけが残っている。全体的には統一新羅時代の塔の典型的な姿をしているが、一重目の軸部の下には支えとなる石が挟まっている。これは高麗石塔へと続く新しい形式で、統一新羅後期に建てられたものと推定できる。各重の構成がすばらしく、優雅である。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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