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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일기류
수량/면적 합 9책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충청남도 아산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최*** 
관리자(관리단체) 문***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이 책은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이순신(1545∼1598)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연도별로 7권이다.

이순신은 28살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불행하게도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실격하였고, 4년 뒤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벼슬을 시작했다. 사대부가의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있어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詩)를 짓는데도 특출하였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곧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사천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극한 충성심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일기의 구성을 보면 제1권은『임진일기』로 선조 25년(1592) 5월 1일부터 선조 26년(1593) 3월까지 27매, 제2권은『계사일기』로 선조 26년(1593)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30매, 제3권은『갑오일기』로 선조 27년(1594)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52매, 제4권은『병신일기』로 선조 29년(1596) 1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41매, 제5권은『정유일기』로 선조 30년(1597) 4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27매, 제6권은『정유일기속』으로 선조 30년(1597) 8월 4일부터 선조 31년(1598) 1월 4일까지 20매이나 약간의 중복된 부분이 있다. 제7권은『무술일기』로 선조 31년(1592)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8매로 구성되어 있다.

7년의 난 동안 왜적과 싸우면서 틈틈이 계속하여 쓴 것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하여 390여년을 간직해 온 것이다. 이것은『충무공전서』에 수록된 난중일기의 초본으로, 내용중에는 수군통제에 관한 군사비책과 전황을 보고한 장계의 초안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군사제도에 대해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로 평가된다.

This is a collection of seven books containing war diaries and drafts of letters and reports written by Yi Sun-sin (1545-1598) during the Imjin Waera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 seven-year war waged between Korea (then Joseon) and Japan triggered by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was in 1576 when he was 32 years old that Yi Sun-sin passed the state military examination and started his public career as a low-ranking military official. While Yi was a potent military leader, he was also a talented man of letters and faithful Confucian follower devoted to its virtues such as loyalty and filial piety. Also a capable military strategist and a man of foresight, he foresaw the Japanese invasion while he was serving as a Naval Commander-in-chief for West Jeolla-do and led systematic preparations for war by building battleships and increasing military exercises. With Japan invading Korea in 1592, his meticulous preparations paid off with great historic victories at the battles that ensued one after another at the seas off Okpo (1592), Danghangpo (1592), Hansando (1592), Myeongnyang (1597), and Noryang (1598). After the war, which ended with his heroic death, he was honored with posthumous honorary titles including First-Grade Meritorious Subject of Seonmu (“Bountiful Warrior”) and Chungmu (“Loyal Warrior”). Possessing self-sacrificial patriotism, noble character, and outstanding leadership, Yi Sun-sin played a crucial role in saving Korea from one of its formidable foreign enemies, earning admiration nationwide as one of the greatest heroes in Korean history. The collection consists of seven books titled Imjin Ilgi (“Imjin Year Diary,” 54 pages, from the 5th month in 1592 to the 3rd month the following year), Gyesa Ilgi (“Gyesa Year Diary,” 60 pages, from the 5th month to the 9th month in 1593), Gabo Ilgi (“Gabo Year Diary,” 104 pages, from the 1st to the 7th month in 1594), Byeongsin Ilgi (“Byeongsin Year Diary,” 82 pages, from the 1st to the 10th month in 1596), Jeongyu Ilgi (“Jeongyu Year Diary,” 54 pages, from the 4th to the 10th month in 1597), Jeongyu Ilgi-sok (“Annex to the Jeongyu Year Diary,” 40 pages, from the 8th month in 1597 to the 1st month in 1598), and Musul Ilgi (“Musul Year Diary,” 16 pages, from the 9th to the 10th month in 1598). Yi Sun-sin’s war diaries have been kept by his descendants and were used as a source material for the “War Diary” (Nanjung Ilgi) contained in The Collected Writings by the Loyal Warrior (Chungmugong Jeonseo) published in 1795. The diaries contain valuable information about the military strategies and tactics used by the naval forces during the mid-Joseon period as well as the drafts of the reports sent to the king on the military situations during the Imjin Waera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这本书是壬辰倭乱(1592∼1598)时李舜臣(1545∼1598)亲笔所写的日记,根据年份共有7卷。李舜臣28岁那年参加了武人选拔考试-训练院别科的应试,不幸的是因为所骑的马跌倒,从而失去了资格,4年后武科及第,以权知训练院奉事,开始了自己的官场生涯。不仅在士大夫传统的忠孝和文学领域成就突出,诗也作的很好。在担任全罗左道水军节度使时,为了防止倭寇的侵入,以丽水为中心制造船并增强军备等措施来对付日本的侵略。1592年壬辰倭乱爆发后,在玉浦海战、龟船最初亮相的露梁津海战、唐项浦海战、闲山海战等各个地方取得了胜利,丁酉再乱时,在鸣梁海战等中取得了胜利。于其死后的1604年,被升为1等宣武功臣,追赠为领议政,并赐予了忠武的谥号。以其炽热的忠诚之心、崇高的人格及伟大的统率力,不仅拯救了处于危机中的国家,在民族史上也留下了自己光辉一页。7年的战乱中,李舜臣以难以计数的血泪为代价写下了这个日记,与倭寇战斗的同时笔耕不辍,后代子孙代代相传,珍藏了390多年。这作为《忠武公全书》里收录的乱中日记的初本,内容中详细收录了有关水军统制的军事对策和报告战况的状启草案等,被评价为研究当时军事制度的重要资料。

この本は壬辰倭乱(1592~1598)の時に李舜臣(1545~1598)が自筆で作成した日記で、年度別に7巻ある。李舜臣は28歳になった年に武人選抜試験である訓練院別科を受けたが、不幸にも乗った馬が倒れたせいで失格になり、4年後に武科に合格して権知訓練院奉事として初めて官職についた。士大夫家の伝統である忠孝と文学に優れていただけなく、詩を書くことにも特に優れていた。全羅左道の水軍節度使を司っていた時、外敵の侵入に備えて麗水を中心に船を作り、軍費を増やすなど日本の侵略に備えた。1592年に壬辰倭乱が起こると、玉浦大捷や、亀船が最初に姿を現した鷺梁津海戦、唐項浦海戦、閑山大捷など至る所で勝利を収め、丁酉再乱の時には鳴梁大捷などで勝利を収めた。彼が死んだ後1604年に宣武功臣1等に官職が上がり、領議政に追贈され、忠武という諡号を賜った。この上ない忠誠心と崇高な人格、偉大な統率力で危機に直面した国を救ったことなどで、民族史に独歩的に永遠に残る人物である。この日記には7年間の乱の間の李舜臣の血と涙が滲んでおり、日本と戦う合間に書き続けたもので、子孫たちが390年間代々大切に保存してきたものである。これは『忠武公全書』に収録された『乱中日記』の草本で、内容の中には水軍統制に関する軍事秘策と戦況を報告した上啓の草案などが詳しく収録されており、当時の軍事制度について研究価値が非常に高い資料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

이 책은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이순신(1545∼1598)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연도별로 7권이다.

이순신은 28살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불행하게도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실격하였고, 4년 뒤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벼슬을 시작했다. 사대부가의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있어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詩)를 짓는데도 특출하였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곧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사천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극한 충성심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일기의 구성을 보면 제1권은『임진일기』로 선조 25년(1592) 5월 1일부터 선조 26년(1593) 3월까지 27매, 제2권은『계사일기』로 선조 26년(1593)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30매, 제3권은『갑오일기』로 선조 27년(1594)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52매, 제4권은『병신일기』로 선조 29년(1596) 1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41매, 제5권은『정유일기』로 선조 30년(1597) 4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27매, 제6권은『정유일기속』으로 선조 30년(1597) 8월 4일부터 선조 31년(1598) 1월 4일까지 20매이나 약간의 중복된 부분이 있다. 제7권은『무술일기』로 선조 31년(1592)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8매로 구성되어 있다.

7년의 난 동안 왜적과 싸우면서 틈틈이 계속하여 쓴 것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하여 390여년을 간직해 온 것이다. 이것은『충무공전서』에 수록된 난중일기의 초본으로, 내용중에는 수군통제에 관한 군사비책과 전황을 보고한 장계의 초안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군사제도에 대해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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