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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충청남도 부여군 정림로 83 (부여읍, 정림사지) 정림사지박물관
시 대 백제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부여군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This elegant five-story stone pagoda of the Baekje period exhibits a refined structural beauty. Su Dingfang, a general of the Tang Dynasty, made an inscription meaning “Pagoda Celebrating the Destruction of Baekje” on this pagoda, after destroying Baekje in alliance with Silla, hence the pagoda was once humiliated by being falsely called for some time as Pyeongjetap, meaning “celebrating pagoda on destroying Baekje.” The pagoda’s five-story body stands on a single narrow low platform, and stone pillars are fixed into the middle and corners of each side of the platform. Pillars displaying the baeheullim style (narrow at the upper and lower part and convex at the middle of the pillar) stand at each corner of the stories of the pagoda’s body. The roofstones are thin and wide, and raised at the end of the eaves to give it a nimble appearance. Overall, the pagoda has a similar structure to that of a wooden building, showing the significant characteristic of this pagoda. Although the pagoda faithfully follows the structure of wooden buildings, it is not a mere imitation but rather a refined and creative work. The figure in general is very majestic and beautiful. The pagoda is regarded as an extremely precious heritage, being one of only two extant stone pagodas of the Baekje Period along with the Stone Pagoda at the Mireuksa Temple Site, Iksan (Treasure No. 11).

建造在扶馀定林寺址上的石塔,在低窄的一层基坛上立着5层塔身。与新罗结成联合军致使百济灭亡的唐朝将帅苏定方在这座塔上留下了意为‘征伐百济的纪念塔’的文句,因此一度曾受到了被误称为‘平济塔’的侮辱。低窄的一层基坛和采用柱微凸线原理的柱子造型、薄而宽的屋顶石形状等很好地遵循了木造建筑物的风格,同时还显示了凝练且富有创意的造型,其整体样式非常庄重华美。与益山弥勒寺址石塔(国宝第11号)一起,是仅存的两座百济时代石塔,仅凭此点也可被评价为珍贵的资料,是通过简练精致的造型美散发出高贵气息的优秀作品。

扶余定林寺址に建てられた石塔で、狭くて低い一段の基壇の上に五重の塔身を立てた形である。新羅との連合軍で百済を滅亡させた唐の将帥である蘇定方が、「百済を征伐した記念塔」という意味の字をこの塔に残して、一時は「平済塔」と間違って呼ばれた侮辱を受けたこともあった。狭くて浅い一段の基壇とエンタシス技法による柱の表現、薄くて広い屋蓋石の形態などは木造建築物の形式を忠実に全うしながらも単純な模倣ではない洗練かつ創意的な造形を見せ、全体の形が非常に荘重で美しい。益山弥勒寺址石塔(国宝第11号)とともに2基だけ残っている百済時代の石塔という点でも貴重な資料として評価され、洗練かつ精密な造形美を通じて格調高い気品が感じられる美しい作品である。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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