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금암기적비 (黔巖紀蹟碑)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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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석비 1基, 토지 1㎡ |
지정(등록)일 | 1978.12.18 |
소 재 지 | 서울 은평구 진관동 45-5 |
소유자(소유단체) | SH공사 |
관리자(관리단체) | SH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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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은평구 문화관광과 02-351-6522
문화재 설명
조선 정조가 명릉(숙종의 묘:현재 사적 제98호)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인 영조의 옛 일을 회상하면서 친히 글을 짓고 세운 비이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옆면에서 볼때 지붕선이 여덞팔(八)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을 모방한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영조가 왕자인 연잉군으로 있을 때 부왕인 숙종의 탄신일을 맞아 명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금암발참(黔巖撥站)에서 쉬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후 덕수천(창릉천)을 건너가는 소도둑을 잡았다는 말에 참장(站將)을 불러놓고 “필시 흉년에 춥고 배가 고파 도둑질을 했을 것이니 선처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튿날 새벽에 궁궐로 돌아가니 세제(世弟)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이 사건은 영조가 50년간 선정을 베푸는 징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곳은 의주로 가는 역의 건물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 역사 건물들은 없어지고 비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