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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벌 충재일기 (權橃 沖齋日記)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일기류
수량/면적 6책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상북도 봉화군 충재길 60 (봉화읍, 충재박물관)
시 대 중종 2년(1507)∼5년(1510)
소유자(소유단체) 권*** 
관리자(관리단체) 충재박물관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문화재 설명

조선 중종조의 학자이며, 관료로 이름을 떨친 권벌(權橃, 1478~1548)의 친필일기이다. 권벌의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沖齋), 중종 2(1507)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하다가, 중종 14(1519)년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0여년간 야인으로 있다가 동왕 28(1533)년에 다시 소환되어 벼슬이 우찬성에 까지 올랐었다. 그러나 명종이 즉위하던 해에 또 다시 을사사화를 당하여 삭주로 귀양갔다가 명종 3(1548)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충재일기는 권벌이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할 때 직접 기록한 친필로서 한원일기(翰苑日記) 2책, 당후일기(堂后日記) 1책, 승선시일기(承宣時日記) 2책, 신창령추단일기(新昌令推斷日記) 1책 등 모두 6책이다.

ㅇ 한원일기는 예문관 검열로 재직할 때의 일기이다. 1책은 중종 3(1508)년 1월 5일부터 9월 20일, 2책은 12월 1일부터 동왕 4(1509)년 9월 14일까지 기록되어 있다. 한원은 문한서(文翰署)·한림원(翰林院)으로 불렸던 예문관의 별칭이다.

ㅇ 당후일기는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로 재직시에 적은 일기로 중종 5(1510)년 3월 1일에서 3월 30일까지의 기록이다. 당후(堂后)란 승정원 주서가 거처하던 방으로 승정원 뒤에 위치해 있다 하여 주서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ㅇ 승선시일기는 승정원 승지로 재직할 당시의 공사를 기록한 일기로 1책은 중종 13(1518)년 5월 15일부터 7월 5일, 2책은 7월 10일부터 11월 6일까지의 기록이다.

ㅇ 신창령추단일기는 승정원 주서 재직 시 서얼 출신 종친 신창령(新昌令) 이흔(李訢)의 역모사건 전말을 추단한 기록으로 중종 4(1509)년 10월 28일에 작성되었다.



이들 일기는『중종실록』을 편찬할 때에 자료로서 채용되었으며, 권벌의 문집인 충재집(沖齋集)에도 일부 실려 있다. 당시 관료로서의 생활실태와 중앙정부의 일상 행사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 자료는 드물기 때문에 유희춘의『미암일기(眉巖日記)』와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등과 함께 귀중한 사료가 된다. 더구나 권벌의 뛰어난 문장과 필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This is the diary of Gwon Beol (1478-1548) whose pen name was Chungjae, a government official and a scholar during the reign of King Jungjong of Joseon. He served as a high ranking government official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507 (the 2nd year of the reign of King Jungjong) but was dismissed one time in the first purge of scholars and exiled in the second purge of scholars. The contents of the diary can be found in his anthology, Chungjaejip, and they were used as basic data for Jungjong sillok (Annals of King Jungjong). The diary is a precious record that describes the life of a government official as well as routine events of the government before the reign of King Seonjo. Such detailed record of everyday life of a government official at the palace is very rare since a majority of such records were burn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For this reason, Gwon Beol’s diary is one of the most highly valued records along with some others that survived the fire such as the Miam Ilgi (Diary of Miam) by Yu Hui-chun and the Diary of Seokdam by Yi I. Events that took place after the invasion are well described in the Diaries of the Royal Secretariat. Chungjae Ilgi (Diary of Chungjae) is also a great demonstration of Gwon Beol’s superb writing and calligraphy skills.

此书是中宗朝的学者兼官僚冲斋权筏(1478-1548)亲笔书写的日记。详细记录了当时官吏生活实况和中央政府日常活动此类书籍还有壬辰倭乱以后的«承政院日记»等,留下了详细的记录,但宣祖以前的大部分记录都在壬辰倭乱时期被烧毁。因此,此书与柳希春的«眉岩日记»、李珥的«石潭日记»一同成为珍贵的史料。尤其是权筏的书法和文笔也使此书弥足珍贵。

この本は中宗朝の学者でありながら官僚であった、沖斎権(1478~1548)が手書きした日記である。このように、当時官僚としての生活実態や中央政府の日常行事が詳しく記録されているのは、壬辰倭乱以降のものなら『承政院日記』が残っている。宣祖以前のものは壬辰倭乱の時燃えてなくなってしまったため、柳希春の『眉岩日記』、李珥の『石潭日記』と共に貴重な史料になっている。その上、優れた権の書体と文章だけでも大変貴重な記録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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