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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유묵 -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安重根義士 遺墨 - 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1991.07.12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석주선기념박물관 (죽전동,현대홈타운4차3단지)
시 대 1910년 3월
소유자(소유단체) 단국대학교 
관리자(관리단체)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문화재 설명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급(安重根義士遺墨-欲保東洋先改政界時過失機追悔何及)」은 러일전쟁(露日戰爭) 당시 전의(典醫:대한제국 때 태의원에 딸린 주임의 벼슬. 네 명이 있었음)로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만주 여순 감옥으로 전근되어 근무하던 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1910년 3월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친필을 옥중에서 받아 간직해오던 것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인 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으며 이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된 것이다.

이 유묵에는 “동양을 보존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침략정책을 고쳐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소용없다!”라는 내용을 담아, 일본 정책의 잘못을 고칠 것을 촉구하였으며, 일본인 집정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것은 중국 안위성 선성현에서 만들어진 품질이 우수한 선지(宣紙)에 2행 16자를 쓰고, 그 왼쪽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쓰다(安重根書)”라고 묵으로 쓴 글씨와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찍혀 있다.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ㅇ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欲保東洋先改政略 時過失機追悔何及)

- 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라. 때를 놓치고 기회를 잃은후 후회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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